2025년 무지개백일장 수상작

가면을 벗고 / 피쓰, 2008년생, 띵동상

 나는 무성애자다.


 이렇게 나를 드러내고 글을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나’는 항상 어떤 고등학교 몇 학년 몇 반, 성적은 몇 등급, 어떤 과목을 잘한다는 식으로 소개되곤 한다. 특히 입시에 목을 매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나와 시간을 오래 보내는 학교 친구들은 성 소수자라는 개념 자체를 꺼리기에 그리고 흔히 말하는 정상성의 틀을 벗어나지 않은 수많은 모범생의 집합소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오리엔테이션 날부터 마음에 맞는 친구 C(본인이 요청한 알파벳이다.)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퀴어는 서로를 알아보는 것처럼, 막 친해졌을 때는 몰랐지만, 알고 보니 둘 다 퀴어인 그런 경우였다. C가 없었다면 나의 학교생활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 친구는 생각보다 금방 나에게 커밍아웃한 편인데 나는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나를 부정했다.

 

 내가 처음으로 나를 의심한 건 중학교 2학년이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나는 사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걸 관념으로만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애초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욕망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했다.

 

 12월의 교실은 도파민이 터지는 이야기라면 모두 붙어서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연애 얘기는 중학생들의 흥미를 끌 만했다. 어제까지도 나와 얘기하던 친구들이 모두 한 번씩은 짝사랑을 한 경험이 있으며 지금 짝사랑 중인 친구도 많았다. 나만 없었다. 그런데 없다고 말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내 인생에는 짝사랑했던 상대가 없나? 라는 고민을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없었다. 그렇지만 오래 어울려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남자 사람 친구 A는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좋아한다고 세뇌를 시작했다. 연애하고 싶다는 느낌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친구의 연애 상담을 들어주다가 친구가 “너는 누구 좋아하는 사람 없어?”라고 물어서 시작된 나의 가짜 연애 상담은 나에게 엉뚱한 질문만 남겼다. 그 친구는 나에게 “너는 A랑 안 사귀고 싶어? 썸타는 건?” 이런 걸 물어왔고 나는 A와 사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더니 돌아온 말은 “인간적인 호감이 과해서 착각한 거 아니야?”라는 것이었다. “그러게, 좋아한다는 게 뭐지?”라는 고민은 시작되었고 이틀 동안 나는 온갖 짝사랑 판단 팁을 검색하다가 ‘상대와 키스하는 상상을 해보라’는 글을 마주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상상조차 실패했다. 분명 로맨스 영화에 환장해서 중학생 시절 내내 하이틴 영화를 보며 설렜는데 왜 그 대상이 나랑 A니까 상상이 하나도 안 되는 걸까, 고민 끝에 내가 레즈비언인지부터 고민해보았다. 당연히 아니었고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호감을 느낀 상대가 남자였으니까 바이일 수도 있겠다고 고민하였으나 아니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무성애자’였다. 성애와 낭만적 끌림은 다르다는 개념은 중학생한테는 너무 낯설었지만, 그게 내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회피했다. 나를 의심하는 상태만 남겨놓고 말이다.

 

 다시 고민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나는 연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고 여전히 내가 무성애자인지 확신이 안 섰다. 인정하는 것도 싫었다. 마치 나는 남들과 다르고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친구를 사귀고 싶을 뿐인 1학년이었다. 다른 동네에 있는 학교였기에 나를 아는 사람도 얼마 없었고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연애 이야기에 참여했다. 그렇지만 정말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감도 안 됐다. 연애에 관심 없다고 하면 이상하게 볼까 봐 헤테로의 가면을 쓰고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연애 얘기를 아등바등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연애하고 싶었던 적이 없는데 입 밖으로는 “연예인 누구처럼 생긴 사람이랑 연애하고 싶어”라며 이상형 얘기를 하는 내가 너무 낯설었다. 그날 나는 무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다고 마음이 편해진 건 아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나의 비밀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헤테로인 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점점 연애 얘기를 하지 않아도 편한 친구들이 생겼고 그러다 C가 우연히 내 핸드폰에 저장된 무성애 프라이드 플래그 사진을 발견했다. 그렇게 인생 첫 커밍아웃을 했다. 그랬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무성애자인 나를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꺼내고 난 후가 더 편했다. 그 이후로는 퀴어 프랜들리한 친구들에게는 커밍아웃도 몇 번 더했고 꼭 무성애자라고 공표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냥 친구들에게 나는 연애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 정도는 말할 수 있었다. 몇몇은 나를 이해 못 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도 들었지만, 숨기는 것보다 마음은 편했다. 그때 알았다. 나는 그냥 ‘나’로 살고 싶었던 것이라는 걸. 가면 속 내가 아니라 진짜 내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그 후로 나는 나를 부정하지 않는다. 한때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던 무성애자라는 사실은 이제 나를 잘 나타내는 특징 일부로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나를 인정한 지금도 누구에게나 무성애자라고 말하는 나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이건 사회의 인식이 아예 바뀌거나 내가 엄청난 용기를 가지고 세상에 맞설 자신이 있을 때야 가능할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는 당당하게 누구에게나 무성애자라고 나를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작은 희망을 품고 오늘도 나로서 살아본다.


[심사위원 작품평] 

피쓰 님의 「가면을 벗고」는 자신을 무성애자로 정체화해 가며 반복적으로 느낀 자신 의심과 확신을 그리고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어려움을 진솔한 어조로 적어 내려간 글입니다. 다른 무엇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연결하며 정체화가 가면을 거듭 쓰고 또 벗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이 비록 두려움일지라도 그 감정 안에 희망이 씨앗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 작품은 알려줍니다. 직면의 힘을 느끼게 해준 피쓰님의 글에 감사를 보냅니다.

심사위원 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