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의 4월, 고등학교 올라와서 첫 중간고사를 2주 앞둔 때였다. 교실 제일 뒤편 스탠딩 책상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문제와 씨름하다 무심코 본 옆에 달린 거울 속의 나는 그야말로 눈 뜨고 못 봐줄 꼴을 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았던 성적, 어른들의 권유, ‘일반고에 가면 전교 1등이 아닌 이상 인서울도 힘들다’는 세 살 많은 언니의 조언에 휩쓸려 얼떨결에 동네 특목고에 진학한 내가 퍽 부끄러울 만큼, 모 외국어고등학교의 신입생들은 불타는 야망과 목표를 가지고 제 책상의 수백 페이지짜리 유인물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교실 맨 뒤에서 약 스무 명의 뒤통수를 멍하니 응시하던 나는 ‘휴먼 졸림체’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내 필기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띠링, 고등학교 올라온 후 부모님께서 사 주신 아이패드에 알림음이 울렸다.
그 당시 나는 트위터에 이런저런 조각글을 쓰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내 얼굴도 이름도 출신 학교도 실제 친구도 밝히지 않은 채,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은 내겐 매우 매력적이었고, 140자라는 글자 수 내에서 내 이야기를 마음껏 써 댔다. 예술을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할 수 없게 된 사연, 학교 친구와 어울리는 것이 힘들다는 푸념, 남들과 조금 다른 나-성적 지향을 포함하여-에 대한 이야기 등이 주를 이뤘다. 나와 관심사가 맞는 여러 유저들과 교류하기도 하면서 나름의 소속감을 느끼던 당시의 내 계정에 1:1 채팅이 와 있었다. 나와 친하던-물론 내 또래의 여자아이이며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점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R 양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뮤지컬 랭보 DVD’라고 적힌 파일과 함께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싶지 않냐는 의미심장한 메시지에 파일을 클릭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마어마한 용량의 2시간짜리 영상 파일을 클릭한 건, 사실 그냥 시험공부가 하기 싫었다는 이유가 지배적었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나에 대한 해답이 필요했고, 그것을 찾기 위해 두 시간쯤은 할애할 의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수단이 평소 관심이 있었던 뮤지컬이라면 더욱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야간자율학습 중이었던 나는 주위에 감독 선생님이 없는지 조심히 둘러본 후 이어폰을 꽂고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R 양이 보내준 뮤지컬 랭보는, 프랑스 시골 지역의 열일곱 살짜리 천재 시인 소년 ‘아르튀르 랭보’와 파리의 저명한 시인이지만 많은 고뇌 속에서 고통받는 ‘폴 베를렌느’가 예술을 향해 떠나는 일련의 과정을 그리는 내용의 뮤지컬이었다. 작중 두 사람은 함께 런던으로 떠나는데, 그곳에서 바닷가 모래에 함께 시를 쓴 두 사람은 마치 순례자처럼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서로의 시에 입을 맞춘다. 드라마나 웹툰 따위에서 키스신만 나오면 눈살 찌푸리며 고개 돌리던 나지만 이 입맞춤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닌 서로를 향한 이해, 그리고 치유였기 때문이다.
내가 남들과 다르단 걸 느낀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다.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중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새치가 났다. 부모님은 내가 누굴 닮아서 이러는지 의아해하며 정기적으로 내 머리를 짙은 갈색으로 염색해 주셨고, 그럼에도 미처 제 색을 숨기지 못한 희끄무레한 것이 보일 때면 친구들은 빨리 늙는 거냐며 놀려댔다. 정말 사소한 일이지만 내 ‘다름’ 의 시작이었다.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또래 집단과 어울리는 게 죽을 만큼 어려웠고, 그 무리에 끼는 건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의 학교 상담을 갈 때마다 ‘특이한 아이’ 같은 말을 듣고 와서는 정상성에서 치우친 듯한 나를 걱정했다.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 따위의 말을 알기도 전부터 나는 내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에 중학교 올라갈 때쯤 깨달은 스스로가 동성을 좋아한다는 건 내게 큰 충격이 되진 못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나’라는 인간의 소수성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차 성장이 나타나고 사춘기가 오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성’에 눈 뜰 시기인 중학생 시절, 사귀는 사이였던 같은 학교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매우 좋아해서-인간적으로 동시에 연애적으로- 그 아이만 보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말을 더듬는 수준이었는데, 어쩐지 애인끼리 하는 행동 같은 건 도저히 하고 싶지 않았다. 손을 잡거나 가벼운 포옹을 하는 건 좋았지만 입을 맞춘다거나 깊은 신체적 접촉을 하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 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가 너무 소중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어떤 거부감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넌 날 사랑한다면서 내게 입 맞추거나 하지도 않잖아.
나를 애인으로 생각하긴 해?
2년간의 관계가 끝나기 직전, 불만스럽다는 투로 내게 내뱉은 그 말에 나는 명치를 얻어맞은 듯 한참을 데굴데굴 굴렀다. 고작 상대와 진득하게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내 사랑이 부정당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만큼 억울했다. 동시에 ‘동성애자’라는 집단에도 완전히 섞이지 못하는 ‘나’라는 인간에 환멸이 나서 스스로가 무지막지하게 싫어졌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놀면 다를 거다’라던 엄마 말씀이 무색하게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조금 어울리는 듯하다가도 깊게 섞이지 못했다. 딱히 이렇다 할 이유 없이 이곳에 다다른 나와 각자의 반짝이는 꿈을 가진 아이들, 나는 그들과 똑같은 교실에 앉아 똑같은 수업을 듣고 똑같은 시험을 쳤지만, 그들이 가진 정상성에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었다. 이런 내가 때로는 사회 부적응자 같아서 그런 내 모습에 질려 몸서리쳤고, 때로는 그들에게 맞춰 보려고 의미 없는 발버둥을 쳐 댔다.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생겼다든가, 유행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다든가 하는 거짓말로 포장된 내가 되어서야 ‘고등학교’라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겨우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진짜 ‘나’ 같은 건 아무래도 허상이라고, 진짜 ‘나’는 이상하니까, 정상적이지 않으니까 숨기는 것이 응당 맞다고 말이다.
그랬던 나에게 뮤지컬 속, ‘아르튀르 랭보와 폴 베를렌느’가 말하고 있었다. 서로의 영혼에 입 맞추는 것도 사랑이라고. 사회에서 말하는 연인에 관한 규정 같은 건 허상이라고. 항상 ‘이상한 애’ 취급당하던 랭보가 자신은 이상한 애가 아닌 ‘투시자’일 뿐이라고 화면 너머의 내게 말해줄 때, 나는 교실에 스무 명의 아이들이 있다는 것도 망각한 채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수군거리는 소리, 너 왜 그래? 하는 친구의 다급한 물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 비디오를 도대체 몇 번이나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서른 번을 넘어섰을 때는 집계를 포기했으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녹화된 영상을 볼 때마다 새삼스레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유독 혼자라고 느껴져 소외감에 훌쩍이는 날은 내 학교 책상 서랍 한 켠에 자리 잡은 아르튀르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의 한 철’이 지친 나를 위로해 주곤 했다.
내 책상 서랍 속의 열일곱짜리 방랑자는 사회 속의 이방인인 열일곱 나와 함께 모험을 떠났다. 열일곱 소녀였던 내게 폴 베를렌느는 없었지만, 함께 오아시스를 향해 달려 나가 줄 마음 한 켠의 투시자가 있었다.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채영님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가는 과정을 예술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풀어낸 점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특이한 아이’로서의 이질감을 ‘새치’에 비유한 장면, 거짓으로 포장된 자신을 ‘허상’으로 느끼는 대목 등에서 솔직한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되었습니다. 또한 뮤지컬 ‘랭보’를 통해 “영혼에 입맞추는 것도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포착해 낸 시선과, 서랍 속 긴 방랑의 길을 함께 걸어갈 ‘투시자’를 찾아낸 용기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투시자’가 되어 함께 걸어나간다면,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심사위원 다랴 |
열일곱의 4월, 고등학교 올라와서 첫 중간고사를 2주 앞둔 때였다. 교실 제일 뒤편 스탠딩 책상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문제와 씨름하다 무심코 본 옆에 달린 거울 속의 나는 그야말로 눈 뜨고 못 봐줄 꼴을 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았던 성적, 어른들의 권유, ‘일반고에 가면 전교 1등이 아닌 이상 인서울도 힘들다’는 세 살 많은 언니의 조언에 휩쓸려 얼떨결에 동네 특목고에 진학한 내가 퍽 부끄러울 만큼, 모 외국어고등학교의 신입생들은 불타는 야망과 목표를 가지고 제 책상의 수백 페이지짜리 유인물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교실 맨 뒤에서 약 스무 명의 뒤통수를 멍하니 응시하던 나는 ‘휴먼 졸림체’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내 필기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띠링, 고등학교 올라온 후 부모님께서 사 주신 아이패드에 알림음이 울렸다.
그 당시 나는 트위터에 이런저런 조각글을 쓰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내 얼굴도 이름도 출신 학교도 실제 친구도 밝히지 않은 채,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은 내겐 매우 매력적이었고, 140자라는 글자 수 내에서 내 이야기를 마음껏 써 댔다. 예술을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할 수 없게 된 사연, 학교 친구와 어울리는 것이 힘들다는 푸념, 남들과 조금 다른 나-성적 지향을 포함하여-에 대한 이야기 등이 주를 이뤘다. 나와 관심사가 맞는 여러 유저들과 교류하기도 하면서 나름의 소속감을 느끼던 당시의 내 계정에 1:1 채팅이 와 있었다. 나와 친하던-물론 내 또래의 여자아이이며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점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R 양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뮤지컬 랭보 DVD’라고 적힌 파일과 함께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싶지 않냐는 의미심장한 메시지에 파일을 클릭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마어마한 용량의 2시간짜리 영상 파일을 클릭한 건, 사실 그냥 시험공부가 하기 싫었다는 이유가 지배적었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나에 대한 해답이 필요했고, 그것을 찾기 위해 두 시간쯤은 할애할 의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수단이 평소 관심이 있었던 뮤지컬이라면 더욱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야간자율학습 중이었던 나는 주위에 감독 선생님이 없는지 조심히 둘러본 후 이어폰을 꽂고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R 양이 보내준 뮤지컬 랭보는, 프랑스 시골 지역의 열일곱 살짜리 천재 시인 소년 ‘아르튀르 랭보’와 파리의 저명한 시인이지만 많은 고뇌 속에서 고통받는 ‘폴 베를렌느’가 예술을 향해 떠나는 일련의 과정을 그리는 내용의 뮤지컬이었다. 작중 두 사람은 함께 런던으로 떠나는데, 그곳에서 바닷가 모래에 함께 시를 쓴 두 사람은 마치 순례자처럼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서로의 시에 입을 맞춘다. 드라마나 웹툰 따위에서 키스신만 나오면 눈살 찌푸리며 고개 돌리던 나지만 이 입맞춤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닌 서로를 향한 이해, 그리고 치유였기 때문이다.
내가 남들과 다르단 걸 느낀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다.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중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새치가 났다. 부모님은 내가 누굴 닮아서 이러는지 의아해하며 정기적으로 내 머리를 짙은 갈색으로 염색해 주셨고, 그럼에도 미처 제 색을 숨기지 못한 희끄무레한 것이 보일 때면 친구들은 빨리 늙는 거냐며 놀려댔다. 정말 사소한 일이지만 내 ‘다름’ 의 시작이었다.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또래 집단과 어울리는 게 죽을 만큼 어려웠고, 그 무리에 끼는 건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의 학교 상담을 갈 때마다 ‘특이한 아이’ 같은 말을 듣고 와서는 정상성에서 치우친 듯한 나를 걱정했다.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 따위의 말을 알기도 전부터 나는 내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에 중학교 올라갈 때쯤 깨달은 스스로가 동성을 좋아한다는 건 내게 큰 충격이 되진 못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나’라는 인간의 소수성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차 성장이 나타나고 사춘기가 오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성’에 눈 뜰 시기인 중학생 시절, 사귀는 사이였던 같은 학교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매우 좋아해서-인간적으로 동시에 연애적으로- 그 아이만 보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말을 더듬는 수준이었는데, 어쩐지 애인끼리 하는 행동 같은 건 도저히 하고 싶지 않았다. 손을 잡거나 가벼운 포옹을 하는 건 좋았지만 입을 맞춘다거나 깊은 신체적 접촉을 하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 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가 너무 소중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어떤 거부감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넌 날 사랑한다면서 내게 입 맞추거나 하지도 않잖아.
나를 애인으로 생각하긴 해?
2년간의 관계가 끝나기 직전, 불만스럽다는 투로 내게 내뱉은 그 말에 나는 명치를 얻어맞은 듯 한참을 데굴데굴 굴렀다. 고작 상대와 진득하게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내 사랑이 부정당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만큼 억울했다. 동시에 ‘동성애자’라는 집단에도 완전히 섞이지 못하는 ‘나’라는 인간에 환멸이 나서 스스로가 무지막지하게 싫어졌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놀면 다를 거다’라던 엄마 말씀이 무색하게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조금 어울리는 듯하다가도 깊게 섞이지 못했다. 딱히 이렇다 할 이유 없이 이곳에 다다른 나와 각자의 반짝이는 꿈을 가진 아이들, 나는 그들과 똑같은 교실에 앉아 똑같은 수업을 듣고 똑같은 시험을 쳤지만, 그들이 가진 정상성에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었다. 이런 내가 때로는 사회 부적응자 같아서 그런 내 모습에 질려 몸서리쳤고, 때로는 그들에게 맞춰 보려고 의미 없는 발버둥을 쳐 댔다.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생겼다든가, 유행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다든가 하는 거짓말로 포장된 내가 되어서야 ‘고등학교’라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겨우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진짜 ‘나’ 같은 건 아무래도 허상이라고, 진짜 ‘나’는 이상하니까, 정상적이지 않으니까 숨기는 것이 응당 맞다고 말이다.
그랬던 나에게 뮤지컬 속, ‘아르튀르 랭보와 폴 베를렌느’가 말하고 있었다. 서로의 영혼에 입 맞추는 것도 사랑이라고. 사회에서 말하는 연인에 관한 규정 같은 건 허상이라고. 항상 ‘이상한 애’ 취급당하던 랭보가 자신은 이상한 애가 아닌 ‘투시자’일 뿐이라고 화면 너머의 내게 말해줄 때, 나는 교실에 스무 명의 아이들이 있다는 것도 망각한 채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수군거리는 소리, 너 왜 그래? 하는 친구의 다급한 물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 비디오를 도대체 몇 번이나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서른 번을 넘어섰을 때는 집계를 포기했으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녹화된 영상을 볼 때마다 새삼스레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유독 혼자라고 느껴져 소외감에 훌쩍이는 날은 내 학교 책상 서랍 한 켠에 자리 잡은 아르튀르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의 한 철’이 지친 나를 위로해 주곤 했다.
내 책상 서랍 속의 열일곱짜리 방랑자는 사회 속의 이방인인 열일곱 나와 함께 모험을 떠났다. 열일곱 소녀였던 내게 폴 베를렌느는 없었지만, 함께 오아시스를 향해 달려 나가 줄 마음 한 켠의 투시자가 있었다.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채영님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가는 과정을 예술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풀어낸 점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특이한 아이’로서의 이질감을 ‘새치’에 비유한 장면, 거짓으로 포장된 자신을 ‘허상’으로 느끼는 대목 등에서 솔직한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되었습니다. 또한 뮤지컬 ‘랭보’를 통해 “영혼에 입맞추는 것도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포착해 낸 시선과, 서랍 속 긴 방랑의 길을 함께 걸어갈 ‘투시자’를 찾아낸 용기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투시자’가 되어 함께 걸어나간다면,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심사위원 다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