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무지개백일장 수상작

하트 페인팅(heart painting) / 임규담, 2008년생, 목소리상

 나는 양성애자가 되고 싶었다. 지금 보면 무슨 헛소리 같지만, 2021년의 나는 정말로 양성애자가 되고 싶었다.

 언니와는 학원에서 만났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창 일차방정식이나 배우고 있을 때 언니는 고등학교를 준비할 나이였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학원 특강실에 주구장창 앉아서 문제를 풀고 이모에게 쓴소리를 듣는 동안 언니는 늘 학원 로비에 앉아 있었다. 특성화고에 원서를 제출하고 막 붙은 나머지 학원에서 해줄 일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수학 학원에서 밀려있던 과도기의 초등학생, 다른 길을 걸어간다고 밀려나 있던 과도기의 중학생. 우리의 공통점은 그것밖에 없었다. 같은 곳에 앉아 있는 여자애 둘이 할 수 있는 건 뻔하다. 가만히 앉아서 핸드폰을 본다거나, 집에 가서는 잊어버릴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는 것. 그 당시에 나는 핸드폰이 없었고,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밖에 없었다. 같이 이야기하기.

 우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주아주 많이 했다. 나는 언니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어서 언니가 타는 버스가 오는 정류장까지 같이 걸어갔다. 나는 버스를 탈 필요가 없었는데도 항상 언니와 다른 버스를 타고 간다고 말하며까지 오래 같이 남아있고 싶었다. 언니의 버스가 너무 멀어져서 이제 다른 차들에 가려질 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언니가 말한 것들에 대해 모조리 찾아봤다. 언니가 가고 싶다던 학교, 언니가 로망을 가졌다는 나라, 언니가 배우던 말들, 언니가 보던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언니로 나를 가득 채우고 싶던 날들이었다.

 언니로 나를 가득 채우고 싶어. 이건 아마 내가 언니에게 가진 감정을 가장 잘 말해주는 문장일 것이다. 나는 언니의 모든 걸 답습하고 싶어 했으니까. 그러다가 언니의 블로그를 알게 된 날이 있었다. 언니가 본다는 애니메이션을 검색하고 또 검색하다가 나온 결과물이었다. 아 저거 언니 그림체야. 언니를 다 삼킬 것같이 살던 나였기 때문에 그게 언니의 계정이라는 건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블로그에는 트위터 계정이 태그되어 있었다. 언니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하늘을 찌르던 당시의 나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그 계정에 들어갔다.

 완벽하게 틀에 박힌, 정상성의 가호 안에서 살던 내가 인생 처음으로 퀴어 플래그를 본 날이었다. 퀴어 플래그 그리고 bisexual. 바이섹슈얼이 양성애자를 뜻하고, 양성애자는 두 가지 성별에 성적, 그리고 로맨틱적 이끌림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그날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날부터 바이섹슈얼이 되고 싶었다. 언니가 공부하던 외국어도 배우겠다고 용쓰던 당시였으니까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언니만을 팔로우하고 음침하게 염탐하면서도 언니에게 언니 계정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특히 언니에게 언니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양성애자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나이였는데도 양성애자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언니한테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멀어질 것 같았다.

 우리는 계속 그렇게 지냈다. 난 언니의 모든 걸 알고 싶어하면서도 나에 관한 질문을 해오는 언니에게 대답을 빙빙 돌려서 했다. 내가 언니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보여 주고 싶으면서도 언니가 그 마음을 몰랐으면 했다. 참 모순적인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시간은 언니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면서 사그라들었다. 아니다, 이건 사그라드는 게 아니라 물이 끼얹어져서 꺼진 걸지도 모른다. 언니한테 남자 친구가 있는데 연락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더 이상 연락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내가 언니를 사랑하는지 몰랐다. 나는 그저 언니를 많이, 아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살아왔다. 내가 언니를 좋아했단 사실을 알려준 건 작년의 C였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어쩜 짝사랑 한 걸 4년 동안 잊지 못 했냐고 타박하듯 웃던 그녀 때문에 나는 내가 언니를 짝사랑했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언니를 사랑했구나. 내가 언니를 짝사랑해서 더 이상 연락할 수 없었구나.

 언니와 연락을 안 하는 동안 나는 내 안에 남아있던 언니에 대한 것들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언니는 언니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과도기적 시간에 남아서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언니가 외국어 쓰는 게 멋져서 배우던 스페인어도, 언니의 필기체가 예쁘다고 생각해서 연습하던 필기체도. 그 모든 것이 무거워서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 당시의 나는 언니가 너무 무서워서, 내가 너무 무서워서 모든 걸 피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안다. 그 언니는 나에게 그 모든 걸 안겨주고 간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점차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언니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양성애자가 되고 싶었던 과거의 나는 양성애자는 되지 못했지만 레즈비언이 되었다. 스페인어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아내 지금은 언니보다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다. 필기체는 여전히 젬병이지만 한국어 손 글씨는 폰트만큼 잘 쓸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건 내가 언니와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았다는 상징 같은 것이다. 이제 나는 언니가 무섭지 않다. 내가 무섭지 않다. 사람은 수많은 흔적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라서 사람 안에는 사람이, 그 사람이 남긴 것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제 그 흔적들을 사랑한다. 언니의 마지막까지, 과도기적 내가 남긴 두려움까지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언니에게도 내가 그런 흔적을 남겼기를 작게 소원을 빌어보며 모두가 자신에게 남은 흔적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임규담님의 글이 욕망과 좌절 사이의 혼란을 탐색하는 예리한 시선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애의 늪에 자신을 영원히 남겨두지 않고 느리게나마 걸어 나와 늪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용기가 인상적인 이 글은, 상처의 두려움을 직시함으로써 얻게 되는 삶의 빛나는 순간을 포기하지 말라는 응원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심사위원 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