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무지개백일장 수상작

우리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거야 / 연두이, 2008년생, 목소리상

 나는 예술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보통 예술 고등학교가 그렇듯이 이 학교에도 여학생이 많은데, 우리 반 여자애들은 절반이 머리를 짧게 하고 다닌다. 처음에는 사분의 일 정도였고, 해가 지나서는 반으로 늘었다. 나도 예술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 머리를 잘랐다. 내가 레즈비언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는 예전부터 머리를 짧게 자르고 싶었고, 중학생 때는 반에 머리 짧은 여자애가 없어 용기를 내지 못했을 뿐이었다. 가끔 긴 머리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머리가 길었을 때의 모습보다 지금이 훨씬 더 나답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과는 소위 말하는 열려 있는 세계를 가지고 있다. 딱히 예고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단지 우리 과가 하는 예술은 사회와 사람의 면면을 예리하게 볼 줄 알아야 하는 분야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볼 뿐이다. 젠더퀴어, 폴리아모리, 페미니즘,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를 전공 시간에 해도 ‘괜찮다’.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이 나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건 아니지만, 그 정체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건 나라는 사람을 상처 입히니까. 그래서 이곳에서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아도 내가 나로 여겨지는 기분이다. 과의 분위기에서부터 그런 정체성이 존중받기에 가능했다. 나의 정체성이 수치스럽거나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숨기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교과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한 적이 있었는데, 뻔한 말이지만 동성애는 후천적인 것이고, 말도 안 되는 것이고, 자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 반 애들은 화를 냈다. 나 역시도 그랬다. 결국 그 선생님이 징계를 받는 일은 없었지만, 전공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화를 내거나 울면서 하는 말을 들어주셨다.


 조금 웃긴 이야기지만 나는 그때 내가 가족이 아닌 이성애자 성인 남성에게 그런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느꼈던 것 같다. 누구나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세상에 성소수자가 적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학교에 오기 전까지 나는 나 이외의 성소수자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연대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혐오 발언 앞에서 어떻게 화를 낼 수 있는지 전혀 몰랐다.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느끼는 것은 글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를 가졌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 모든 걸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짝사랑하는 여자애는 없지만 좋아하는 친구가 많다. 그들은 이성애자이기도 동성애자이기도 하고 자신이 무성애자인지 고민하기도 한다. 전 남자친구에 대한 고민을 하거나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는 여자애들도 있다. 연애에 관심 없는 애, 화장을 좋아하는 애, 남자를 좋아해 본 적도 있고 여자를 좋아해 본 적도 있는 애. 정말이지 너무 다양해서 멀미가 날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복잡함이 좋다. 이렇게 다양하다 못해 엉키고 혼잡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지뢰 밟은 것처럼 막말에 상처받는 아이들이 속출하지 않는다는 것도 신기하다.


 나는 그런 곳에서 예술을 하면서 점점 더 신중해지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무성애나 젠더퀴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내가 동성애자인데도 동성애에 대해 잘 모를 때도 많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잘 몰라도, 조심스럽게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는 있다. 여기에서는 그러한 정체성이 우습게 여겨지지 않으니까. 친구들의 창작에서 가시화되니까. 친구의 작품에서 성소수자는 개그적으로 다뤄지지도, 마냥 불행하게만 다뤄지지도 않았다. 그런 것들에 지쳐 있었고 그래서 신중하게 창작에 임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서서히 깨달았다. 우리는 개그를 위해 정체화한 게 아니고, 불행하게 다뤄질 존재도 아니었다는 걸.


 입학 이후 몇 달 만에 다시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머리를 자르고 싶어 했는데, 아예 용기를 내본 적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 나는 이미 머리를 짧게 자르기로 다짐하고 엄마와 함께 미용실에 간 적이 있었다. 엄마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미용실 사장님은 나를 말렸다. 망하게 될 거야. 라고 말하며 사장님은 친절하게 그 예시 사진까지 보여주려 하셨다. 나는 기가 죽어 머리에 물도 못 묻힌 채로 미용실에서 나왔다. 서러워서 눈물을 보였을 때 엄마는 다정한 말씨로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속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예뻐지고 싶어서 머리를 자르러 간 것도 아니었고, 고민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했는데, 왜 내 머리를 내 마음대로 못 하게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우리 반 여자애들의 절반이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거기에 나 하나 보탠다고 티가 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머리를 새로 짧게 자르고 오는 친구들을 보다 보니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엄마. 안 망해. 애들 보니까 망하는 게 더 힘들겠더라. 엄마가 이번에는 조금 덜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미용실에 데려갔다. 처음 가 보는 미용실이었다. 이번에도 미용사가 이상한 말을 하진 않을까 온갖 종류의 걱정을 하고 있는데, 미용사는 그저 어떤 스타일로 짧게 자를 거냐 물어볼 뿐이었다. 머리를 자른 뒤에 거울을 보니 전보다 조금 더 동글동글해진 내가 있었다. 나는 그런 내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집에 돌아가면서는 한껏 들떠서 다시 한번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뭐랬어. 안 망한다고 했지?


 예술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그런 확신을 가지기까지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공간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학교가 내게 알려준 가장 값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다. 우리가 놀림감이 되지 않고, 서로의 편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곳. 그리고 난 그곳에 있다. 우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운이 좋았던 편이라는 걸 인정한다. 내 곁에는 유난히 좋은 어른들과 친구들이 많았다는 것을. 그러나 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는 이런 곳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나누고 싶다. 그곳에서 내가 깨달은 건 환경이 용기를 만든다는 것이었으니까. 아빠, 그때 내가 어려서 그랬던 거 아니야. 나 진짜로 여자 좋아한다니까. 선생님, 그 선생이 동성애자는 정신병자래요. 엄마, 나 잘 어울리지? 이런 말들을 할 수 있는 용기는 환경이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세상의 모든 성소수자가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속에 꾹꾹 담아두었던 것들을 질러보고, 안 망하던데? 하고 외쳐보는 경험을. 그것은 가면 갈수록 머리카락 자르는 일만큼 쉬워질 것이다. 나는 우리가 망하지 않는 결말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연두이님이 전하고자 한 희망의 메시지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용기가 생겨나는 데에는 때때로 환경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통찰은,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를 탓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그 자체로 다정한 위로이자 격려가 되어줍니다. 하나의 소재를 중심으로 메시지를 능숙하게 이끌어낸 점, 그 메시지를 더욱 또렷하게 각인시키는 인상적인 문장 또한 돋보였습니다.

심사위원 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