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이제 막 세상사에 호기심이 생긴 키만 크고 마음은 어린아이, 바로 나, 여름이었다. 드디어 매미가 우나 싶었는데 학교를 전학 가며 기존의 첫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연애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경험은 어린아이가 눈독 들일 만한 사건이었고, 새 학교에서도 역시나 사귈 사람을 찾게 되었다. (연인이라는 이름의 뜻조차 이해하지 못한 상태라서) 스킨십이 관계에 달린 조건이라면 거부하지도 못할 만큼 덜 자란 시절, 나는 사람과 온기를 나누는 일에 과도하게 목말라 있었다. 아껴지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솟구치는 의구심을 들춰보려조차 하지 않았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는 한 달을 못 채웠는데, 헤어진 이후 추잡한 소문과 괴롭힘이 이어졌다. 서로가 인간관계에 일절 간섭하지 않은 주제에 상대만 기묘하게 피해자 행세를 한 탓이었다. 그쪽은 꾸준히 인망 좋은 소년, 나는 ‘남자만 밝히는 계집X’으로 암암리에 확정됐다. 새로운 환경에서 배척당한 이방인이 된 나는 어디로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도피처가 캘리그래피 방과 후였다. 당연하게도 나는 거기서 가장 연장자였다. 주로 부모님이 저학년 자녀의 손글씨를 바르게 하기 위해 가입시켰기에 고학년 자체가 없었다. 구석에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거나, 예쁜 재료를 고르려 달려드는 가지각색의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모두 오냐오냐 잘 돌봐주시는 호쾌한 선생님까지. 어색했던 첫날이 무색하게 다음 날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그 속에 녹아들었다. 그곳에서 가장 처음 말꼬리를 트게 된 건 내가 오기 전까지 연장자이던 아이. 그래, 나는 거기서 너를 만났다.
너는 두 살 어린 동생인데 성격이 굉장히 냉소적이고 조숙했던 탓에 오히려 내가 더 방방 뛰어다니며 활달하게 굴었다. 전혀 다른 매력에 이끌려 하굣길까지 함께하게 됐는데, 우연찮게 같은 게임을 하고, 같은 만화를 좋아하고, 같은 동네에 그것도 3분 정도 거리에 산다니. 두 집 다 부모님이 맞벌이에 퇴근 시간이 늦어 혼자라 지루했다. 게다가 네게 또래는 시시했고, 내게 또래는 두려웠으니 이보다 적합한 상대가 있을까? 우연이 너무 많아도 운명이 되는 것 같다.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닐다가 집에 도착하면 이불을 깔고 누워 똑같은 만화 주제가를 흥얼거렸다. 찰싹 붙어 종일 벌어진 일들을 조잘대다가, 배고파지면 밥을 먹고, 게임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냉장고에 우리 집엔 어색한 블루레몬에이드를 놓았는데, 그게 자연스러워지는 것도 좋았다. 얼마나 오래 머물다 가는지 한 번씩 퇴근하는 아빠와 마주칠 때면 재빠르게 도망갔다. 그렇게 매일 우리 집으로, 어쩌다 한두 번은 너희 집에서 놀기도 했는데 내부가 전혀 다른 구조인 게 신기했다.
원치 않는 방과 후인 만큼 빼먹는 일이 잦았던 너는 나와 함께하며 꼬박꼬박 나가게 됐다. 그 사실을 선생님께 전해 들었을 때 감격스러워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물론 같이 빼먹는 일도 있었지만) 지긋지긋한 따돌림은 시간이 지나 화력을 잃었고, 평범한 반 친구 몇 명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도 행복하다는 감정은 주지 못했다. 내 것, 온전한 내 사람. 네가 내게 주는 충족감, 풍만함은 그 누구와도 맞바꿀 수 없었다. 너는 내 일부가 된 것이 분명했다. 나보다도 내가 되어 있었다.
그해 지독한 겨울.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다. 조막만 한 차가운 손이 목덜미를 간지럽히니 의도치 않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살짝 서늘하고 거친 촉감.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몸짓을 멈추고 한창 숨을 고르고 있는데, 네가 내 귓바퀴를 핥았다.
“꺅!”
“어때?”
“간지러워.”
…왜? 성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나이. 너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선을 넘어온 걸까. 이유 따위 알 수 없었다. 다만 중요한 건, 처음으로 함께 겪은 그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고 우리는 늘 무료함을 느끼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서로의 몸에 붉은 자국을 여럿 남기고, 그걸 가리려 파스를 붙이던 비밀스러운 나날. 오래도록 집에 오면 이런 일이 반복됐다. 여느 일상처럼 밥을 먹고 게임을 하다가도 저녁쯤이 되면 몸을 맞댔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실은 굉장히 두근거리게. 가슴이 간질간질하니 시도 때도 없이 붕 뜬 기분을 겪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너와 대화만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그날도 역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처음으로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로서 이미 차고 넘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왜일까? 이보다 특별할 수가 있나? 나도 모르게, 정말 생각을 거치지 않고 몸이 먼저 나갔다. 입술을 포개기 직전, 네가 두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입은 좀…”
아주 짧은 한마디에 번뜩 정신이 돌아왔다. 침묵이 이어지는 게 두려워 횡설수설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고 네 답변도 들리지 않았다. 너는 몸을 일으켜 눈 한 번 맞추지 않고는 집을 나섰다.
어째서 입을 맞추려 한 거지? 왜 거부당한 거지? 우리는 무슨 관계인 거지? 현관문이 닫히고 한참을 고민했다. 퀴어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더니 익명의 레즈비언이 상담도 해줬다. 그래도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가 그저 창피하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한동안 널 볼 수 없었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우연적으로, 고의적으로…….
다시 말을 주고받기 시작한 건 아무 일 없던 척 다가온 네 덕이었다. 나는 그 일을 잊었다. 잊으려 애썼더니 정말로 잊혔다. 그런 손에도 잡히지 않을 꿈 같은 일보다 친구로 함께하는 순간이 행복하니까 잊어야만 했다. 사회가 용인하든 말든 네가 인정하지 않았기에. 연애라는 일의 의미가 퇴색한 지 오래였음에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귀었다. 가슴속 공백을 채우는 방법을 몰라 더 사람을 만났다. 연애는 일종의 업무가 되었다. 말을 걸고, 친해져서, 썸을 타고, 사귀다가, 헤어지는, 피곤한 일. 하지만 그 얘기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널 보면 조금쯤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네게 마음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다시 찾아온 일 년은 정말 친구로 지냈다. 어차피 그 관계가 제일 특별했다.
나는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환경이 너무 급격하게 변해서 정신이 없었다. 꾸준히 널 만났지만, 확실히 빈도가 줄었다. 게다가 흔히들 말하는 중이병이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잘나가는 남자애랑 썸도 타고, 밤늦게까지 놀다 들어가고, 안 그래도 엉망이던 집안 분위기를 아주 뜨겁게 만들어줬다.
반항기를 지나 2학년. 안정적으로 돌아오니 널 만날 시간이 늘었다. 사이가 그럭저럭 회복되니 네가 같은 중학교에 들어갈 것 같다고 알려줬다. 다시 너와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다니 여간 기대되는 일이 아니었다. 미리 학교도 소개해 주고, 내 체육복을 입히고 폭소했다. 왜소한 체구에 소매가 헐렁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어리숙하니 후배란 게 와닿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학식 날, 너는 길게 늘어뜨리던 머리를 짧게 쳐냈다. 원래도 날렵한 인상이 내 취향이었는데, 질감을 낸 머리가 지독하게 잘 어울려서 마음이 또 설렜다. 아무리 억눌러도 웃는 표정만 보면 얼굴이 터질 것 같고, 이름만 들어도 온몸의 신경이 바짝 섰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네가 학교라는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알아채 버렸다. 여태까지 가슴속 공백이라 여겼던 곳엔 사실 전부 네가 있었다는 걸. 자리를 꿰차고 아무것도 채워주진 않는 허상으로서. 원하는 바를 인지하고도 억누르기만 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주체가 안 됐다. 네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편했다. 너와 한마디라도 나눈 누군가에게 매일 속이 들끓어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감히 그 자식이, 감히 내가… 그러다 네가 내 손에 입 맞춘 날에는 완전히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만둘까 싶을 때쯤이면 무지한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네가 미웠다. 선은 진작 지워지고, 감정은 기이하게 뒤틀리고, 마음은 집착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 달가량 지나 네가 내 과거 썸남인 노는 남자애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때 처음으로 인생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다. 형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고, 클럽에 다니던 애.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 않다고 말해도 무시당했다. 밤에서 새벽 사이에 데이트를 즐기고, 어디 폐가에 갔다는 둥 위험한 소식을 마주할 때마다 속이 매슥거려서 미칠 것 같았다. 새로운 흥미를 찾은 너는 말이 꾸준히 줄어들고, 홀로 애태우고 있는데 간만에 연락이 닿았다. 반가운 게 무색하게 끝내 사귄다는 이야기였다. 그 길로 곧장 전화를 걸어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대체 너한테 난 뭐야?”
물었는데,
“재밌고 웃긴 사람. 병X 같잖아.”
이후로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하게 지내.”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까지 가시 돋친 말은 나오지 않았는데, 대신 그게 내 가슴을 찔렀다. 전신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에 압도당해 울부짖었다. 심장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기분, 차라리 뜯어내고 싶은 기분, 뻥 뚫린 기분… 계속 틈만 나면 울고, 신경질적으로 굴다가, 세상을 다 잃은 듯 미동도 안 했다. 결국 “우울증이 온 거니 뭐니,” 엄마에게 등 떠밀려 의사와 상담하게 됐다. 모든 이야기를 마치니 어른이 내놓은 답변.
“소중한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상처가 됐겠네요.”
‘친구’라는 말이 어쩜 그리 안 어울리는지. 그제야 받아들였다. 아, 이게 사랑이었구나. 몸을 맞댈 때도, 설레는 마음이 들 때도, 속이 들끓을 때도, 네가 없는 삶을 살 바엔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때도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 이름을 붙이는 순간 무엇도 지킬 수 없을 걸 알았다. 나의 마음도, 우리의 관계도, 세상의 곁도. 폭풍처럼 모든 게 지나가고 나서야 남은 잔재를 더듬어 사랑을 인정했다.
5년, 내 첫사랑의 마침표였다.
나는 아주 밋밋한 너의 몸을 사랑했다. 그 살가죽을 매만지면 느껴지는 삶의 의미를 갈구했다. 그래, 네가 내게 알려준 건 사랑뿐만 아니라 나의 지향성, 삶, 어쩌면 처음 만난 ‘여름’이라는 이름까지도….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함께 누워 웃던 그때의 우리를 말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고백하지 못한 지하방에서의 첫사랑이자, 이제는 평범한 친구가 된 네게 이 글이 닿지 않길 바란다. 이 사랑은 너무도 미숙하니까.
[심사위원 작품평] 누구나 첫사랑과의 만남은 미성숙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순수했지만 혼란스럽고, 복잡하지만 진지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그려졌습니다. 단순한 성장 이야기, 첫사랑에 대한 회고에 그치지 않고 성 정체성과 자기 존재에 대한 탐색이 엿보여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자기만의 언어로 더 멋진 세상에서 목소리를 들려주시길 응원합니다. 심사위원 우재 |
초등학교 5학년. 이제 막 세상사에 호기심이 생긴 키만 크고 마음은 어린아이, 바로 나, 여름이었다. 드디어 매미가 우나 싶었는데 학교를 전학 가며 기존의 첫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연애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경험은 어린아이가 눈독 들일 만한 사건이었고, 새 학교에서도 역시나 사귈 사람을 찾게 되었다. (연인이라는 이름의 뜻조차 이해하지 못한 상태라서) 스킨십이 관계에 달린 조건이라면 거부하지도 못할 만큼 덜 자란 시절, 나는 사람과 온기를 나누는 일에 과도하게 목말라 있었다. 아껴지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솟구치는 의구심을 들춰보려조차 하지 않았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는 한 달을 못 채웠는데, 헤어진 이후 추잡한 소문과 괴롭힘이 이어졌다. 서로가 인간관계에 일절 간섭하지 않은 주제에 상대만 기묘하게 피해자 행세를 한 탓이었다. 그쪽은 꾸준히 인망 좋은 소년, 나는 ‘남자만 밝히는 계집X’으로 암암리에 확정됐다. 새로운 환경에서 배척당한 이방인이 된 나는 어디로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도피처가 캘리그래피 방과 후였다. 당연하게도 나는 거기서 가장 연장자였다. 주로 부모님이 저학년 자녀의 손글씨를 바르게 하기 위해 가입시켰기에 고학년 자체가 없었다. 구석에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거나, 예쁜 재료를 고르려 달려드는 가지각색의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모두 오냐오냐 잘 돌봐주시는 호쾌한 선생님까지. 어색했던 첫날이 무색하게 다음 날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그 속에 녹아들었다. 그곳에서 가장 처음 말꼬리를 트게 된 건 내가 오기 전까지 연장자이던 아이. 그래, 나는 거기서 너를 만났다.
너는 두 살 어린 동생인데 성격이 굉장히 냉소적이고 조숙했던 탓에 오히려 내가 더 방방 뛰어다니며 활달하게 굴었다. 전혀 다른 매력에 이끌려 하굣길까지 함께하게 됐는데, 우연찮게 같은 게임을 하고, 같은 만화를 좋아하고, 같은 동네에 그것도 3분 정도 거리에 산다니. 두 집 다 부모님이 맞벌이에 퇴근 시간이 늦어 혼자라 지루했다. 게다가 네게 또래는 시시했고, 내게 또래는 두려웠으니 이보다 적합한 상대가 있을까? 우연이 너무 많아도 운명이 되는 것 같다.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닐다가 집에 도착하면 이불을 깔고 누워 똑같은 만화 주제가를 흥얼거렸다. 찰싹 붙어 종일 벌어진 일들을 조잘대다가, 배고파지면 밥을 먹고, 게임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냉장고에 우리 집엔 어색한 블루레몬에이드를 놓았는데, 그게 자연스러워지는 것도 좋았다. 얼마나 오래 머물다 가는지 한 번씩 퇴근하는 아빠와 마주칠 때면 재빠르게 도망갔다. 그렇게 매일 우리 집으로, 어쩌다 한두 번은 너희 집에서 놀기도 했는데 내부가 전혀 다른 구조인 게 신기했다.
원치 않는 방과 후인 만큼 빼먹는 일이 잦았던 너는 나와 함께하며 꼬박꼬박 나가게 됐다. 그 사실을 선생님께 전해 들었을 때 감격스러워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물론 같이 빼먹는 일도 있었지만) 지긋지긋한 따돌림은 시간이 지나 화력을 잃었고, 평범한 반 친구 몇 명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도 행복하다는 감정은 주지 못했다. 내 것, 온전한 내 사람. 네가 내게 주는 충족감, 풍만함은 그 누구와도 맞바꿀 수 없었다. 너는 내 일부가 된 것이 분명했다. 나보다도 내가 되어 있었다.
그해 지독한 겨울.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다. 조막만 한 차가운 손이 목덜미를 간지럽히니 의도치 않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살짝 서늘하고 거친 촉감.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몸짓을 멈추고 한창 숨을 고르고 있는데, 네가 내 귓바퀴를 핥았다.
“꺅!”
“어때?”
“간지러워.”
…왜? 성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나이. 너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선을 넘어온 걸까. 이유 따위 알 수 없었다. 다만 중요한 건, 처음으로 함께 겪은 그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고 우리는 늘 무료함을 느끼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서로의 몸에 붉은 자국을 여럿 남기고, 그걸 가리려 파스를 붙이던 비밀스러운 나날. 오래도록 집에 오면 이런 일이 반복됐다. 여느 일상처럼 밥을 먹고 게임을 하다가도 저녁쯤이 되면 몸을 맞댔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실은 굉장히 두근거리게. 가슴이 간질간질하니 시도 때도 없이 붕 뜬 기분을 겪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너와 대화만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그날도 역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처음으로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로서 이미 차고 넘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왜일까? 이보다 특별할 수가 있나? 나도 모르게, 정말 생각을 거치지 않고 몸이 먼저 나갔다. 입술을 포개기 직전, 네가 두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입은 좀…”
아주 짧은 한마디에 번뜩 정신이 돌아왔다. 침묵이 이어지는 게 두려워 횡설수설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고 네 답변도 들리지 않았다. 너는 몸을 일으켜 눈 한 번 맞추지 않고는 집을 나섰다.
어째서 입을 맞추려 한 거지? 왜 거부당한 거지? 우리는 무슨 관계인 거지? 현관문이 닫히고 한참을 고민했다. 퀴어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더니 익명의 레즈비언이 상담도 해줬다. 그래도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가 그저 창피하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한동안 널 볼 수 없었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우연적으로, 고의적으로…….
다시 말을 주고받기 시작한 건 아무 일 없던 척 다가온 네 덕이었다. 나는 그 일을 잊었다. 잊으려 애썼더니 정말로 잊혔다. 그런 손에도 잡히지 않을 꿈 같은 일보다 친구로 함께하는 순간이 행복하니까 잊어야만 했다. 사회가 용인하든 말든 네가 인정하지 않았기에. 연애라는 일의 의미가 퇴색한 지 오래였음에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귀었다. 가슴속 공백을 채우는 방법을 몰라 더 사람을 만났다. 연애는 일종의 업무가 되었다. 말을 걸고, 친해져서, 썸을 타고, 사귀다가, 헤어지는, 피곤한 일. 하지만 그 얘기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널 보면 조금쯤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네게 마음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다시 찾아온 일 년은 정말 친구로 지냈다. 어차피 그 관계가 제일 특별했다.
나는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환경이 너무 급격하게 변해서 정신이 없었다. 꾸준히 널 만났지만, 확실히 빈도가 줄었다. 게다가 흔히들 말하는 중이병이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잘나가는 남자애랑 썸도 타고, 밤늦게까지 놀다 들어가고, 안 그래도 엉망이던 집안 분위기를 아주 뜨겁게 만들어줬다.
반항기를 지나 2학년. 안정적으로 돌아오니 널 만날 시간이 늘었다. 사이가 그럭저럭 회복되니 네가 같은 중학교에 들어갈 것 같다고 알려줬다. 다시 너와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다니 여간 기대되는 일이 아니었다. 미리 학교도 소개해 주고, 내 체육복을 입히고 폭소했다. 왜소한 체구에 소매가 헐렁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어리숙하니 후배란 게 와닿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학식 날, 너는 길게 늘어뜨리던 머리를 짧게 쳐냈다. 원래도 날렵한 인상이 내 취향이었는데, 질감을 낸 머리가 지독하게 잘 어울려서 마음이 또 설렜다. 아무리 억눌러도 웃는 표정만 보면 얼굴이 터질 것 같고, 이름만 들어도 온몸의 신경이 바짝 섰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네가 학교라는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알아채 버렸다. 여태까지 가슴속 공백이라 여겼던 곳엔 사실 전부 네가 있었다는 걸. 자리를 꿰차고 아무것도 채워주진 않는 허상으로서. 원하는 바를 인지하고도 억누르기만 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주체가 안 됐다. 네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편했다. 너와 한마디라도 나눈 누군가에게 매일 속이 들끓어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감히 그 자식이, 감히 내가… 그러다 네가 내 손에 입 맞춘 날에는 완전히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만둘까 싶을 때쯤이면 무지한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네가 미웠다. 선은 진작 지워지고, 감정은 기이하게 뒤틀리고, 마음은 집착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 달가량 지나 네가 내 과거 썸남인 노는 남자애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때 처음으로 인생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다. 형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고, 클럽에 다니던 애.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 않다고 말해도 무시당했다. 밤에서 새벽 사이에 데이트를 즐기고, 어디 폐가에 갔다는 둥 위험한 소식을 마주할 때마다 속이 매슥거려서 미칠 것 같았다. 새로운 흥미를 찾은 너는 말이 꾸준히 줄어들고, 홀로 애태우고 있는데 간만에 연락이 닿았다. 반가운 게 무색하게 끝내 사귄다는 이야기였다. 그 길로 곧장 전화를 걸어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대체 너한테 난 뭐야?”
물었는데,
“재밌고 웃긴 사람. 병X 같잖아.”
이후로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하게 지내.”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까지 가시 돋친 말은 나오지 않았는데, 대신 그게 내 가슴을 찔렀다. 전신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에 압도당해 울부짖었다. 심장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기분, 차라리 뜯어내고 싶은 기분, 뻥 뚫린 기분… 계속 틈만 나면 울고, 신경질적으로 굴다가, 세상을 다 잃은 듯 미동도 안 했다. 결국 “우울증이 온 거니 뭐니,” 엄마에게 등 떠밀려 의사와 상담하게 됐다. 모든 이야기를 마치니 어른이 내놓은 답변.
“소중한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상처가 됐겠네요.”
‘친구’라는 말이 어쩜 그리 안 어울리는지. 그제야 받아들였다. 아, 이게 사랑이었구나. 몸을 맞댈 때도, 설레는 마음이 들 때도, 속이 들끓을 때도, 네가 없는 삶을 살 바엔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때도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 이름을 붙이는 순간 무엇도 지킬 수 없을 걸 알았다. 나의 마음도, 우리의 관계도, 세상의 곁도. 폭풍처럼 모든 게 지나가고 나서야 남은 잔재를 더듬어 사랑을 인정했다.
5년, 내 첫사랑의 마침표였다.
나는 아주 밋밋한 너의 몸을 사랑했다. 그 살가죽을 매만지면 느껴지는 삶의 의미를 갈구했다. 그래, 네가 내게 알려준 건 사랑뿐만 아니라 나의 지향성, 삶, 어쩌면 처음 만난 ‘여름’이라는 이름까지도….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함께 누워 웃던 그때의 우리를 말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고백하지 못한 지하방에서의 첫사랑이자, 이제는 평범한 친구가 된 네게 이 글이 닿지 않길 바란다. 이 사랑은 너무도 미숙하니까.
[심사위원 작품평]
누구나 첫사랑과의 만남은 미성숙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순수했지만 혼란스럽고, 복잡하지만 진지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그려졌습니다. 단순한 성장 이야기, 첫사랑에 대한 회고에 그치지 않고 성 정체성과 자기 존재에 대한 탐색이 엿보여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자기만의 언어로 더 멋진 세상에서 목소리를 들려주시길 응원합니다.
심사위원 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