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가 춤출 수 있는 성평등 민주주의 기자회견 / 이인섭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발언문]
안녕하십니까? 저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인섭이라고 합니다. 3.8 세계여성의날 맞이 성소수자 기자회견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기관으로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어떤 말씀을 드리면 좋을까 고민을 하던 중에 띵동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띵동이 만들어지기까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여러 굴곡들이 반영이 되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 중의 하나는 청소년 쉼터에서의 성소수자 청소년의 차별과 배제였습니다. 탈가정의 위기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들도 청소년으로서 당연히 청소년 쉼터 등의 복지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밝혀지게 된 경우에는 잠재적 성범죄자 혹은 쉼터 등 청소년 기관에 풍파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적인 존재들로 여겨져서 입소나 시설의 이용이 거부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성정체성과 상관없이 환대받을 수 있는 위기지원기관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그렇게 띵동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과거보다는 청소년 기관들에서 성소수자를 가시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쉼터 등 청소년 기관에서 커밍아웃한 청소년 성소수자와 함께 하기에는 제대로 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 쉼터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시설을 이용하는 것을 권유합니다. 시스젠더 청소년들은 그나마 정체성을 숨길 수 있지만,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들이 청소년 복지시설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특히 젠더 이분법을 따르지 않는 젠더표현을 하는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완벽하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쉼터뿐만이 아닙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사회에서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작년 띵동에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해바라기 센터에서 성소수자 차별적인 2차 피해를 당한 청소년 성소수자의 사례가 접수되었습니다. 청소년이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마치 성적으로 문란한 것을 의미하고, 성폭력의 위험을 높이는 행동이었다는 식의 몰상식한 발언을 공적인 기관인 해바라기 센터에서 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소수자 인권감수성이 부족한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최근에는 소년보호시설에서 생활 중인 여성 성소수자 청소년으로부터 시설 내에서는 단지 머기가 짧다는 이유만으로도 여러 가지 차별에 노출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쉼터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요주의 인물로 간주를 하고 대우를 하는 것처럼, 소년보소시설에서도 젠더표현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도 선제적인 차별을 당하게 되는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입니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향한 차별도 심각합니다. 최근 온라인상에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발언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실제로 사이버 괴롭힘을 당한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띵동에 상담을 요청하는 건수가 매우 늘어났습니다. 진짜 여성과 가짜 여성을 가르고 폄하하고 차별하는 일들이 횡행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일부 여성운동의 계열에서도 동참을 하고 있는 점이 여성운동과 연대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더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젠더이분법적으로 고정된 성역할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성소수자들이 받는 차별들은 구조적으로 성평등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성평등이라는 주제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삭제하고 무시하는 것은 성평등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를 빼고 성평들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정부가 혐오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청소년 성소수자의 존재를 외면하고 있지만, 이미 현장의 교사와 상담사와 청소년기관 종사자들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나고 있으며,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호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눈감고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치워버려야 할 골칫덩이도 아니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거리도 아닙니다. 당연히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시민이며 정부 복지혜택을 누려야하는 똑같은 청소년입니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계속해서 무시하고 배제하는 것은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자꾸 코너로 몰아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띵동이 상담과 지원의 영역에서 최대한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과의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역부족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정부부처가 오히려 극우 보수세력이나 일부 기독교계의 압박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실제적인 심리적 타격을 입고 있고, 이러한 내용의 보도가 나오면 즉각적으로 상담의 건수가 증가하고 관련한 내용의 문의가 늘어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성소수자 이슈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 성소수자 혐오세력들이 해당 부처에 대해 조직적으로 업무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공무원들이 이로 인해 곤란을 겪고 어려움을 호소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전화테러를 하는 혐오세력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방법을 찾아야 할 문제이지,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우리 성소수자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아직 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하니 성소수자에게 기다려달라고 이야기 할 때가 아닙니다.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정부가 대화해서 설득해야 할 곳은 혐오세력들입니다.
성소수자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의무는 정부에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는 정부가 만들어 나가야 할 일입니다. 더 이상 성소수자들에게 기다리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무책임한 언행을 멈추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성소수자가 춤출 수 있는 성평등 민주주의 기자회견 / 이인섭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발언문]
안녕하십니까? 저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인섭이라고 합니다. 3.8 세계여성의날 맞이 성소수자 기자회견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기관으로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어떤 말씀을 드리면 좋을까 고민을 하던 중에 띵동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띵동이 만들어지기까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여러 굴곡들이 반영이 되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 중의 하나는 청소년 쉼터에서의 성소수자 청소년의 차별과 배제였습니다. 탈가정의 위기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들도 청소년으로서 당연히 청소년 쉼터 등의 복지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밝혀지게 된 경우에는 잠재적 성범죄자 혹은 쉼터 등 청소년 기관에 풍파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적인 존재들로 여겨져서 입소나 시설의 이용이 거부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성정체성과 상관없이 환대받을 수 있는 위기지원기관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그렇게 띵동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과거보다는 청소년 기관들에서 성소수자를 가시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쉼터 등 청소년 기관에서 커밍아웃한 청소년 성소수자와 함께 하기에는 제대로 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 쉼터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시설을 이용하는 것을 권유합니다. 시스젠더 청소년들은 그나마 정체성을 숨길 수 있지만,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들이 청소년 복지시설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특히 젠더 이분법을 따르지 않는 젠더표현을 하는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완벽하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쉼터뿐만이 아닙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사회에서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작년 띵동에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해바라기 센터에서 성소수자 차별적인 2차 피해를 당한 청소년 성소수자의 사례가 접수되었습니다. 청소년이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마치 성적으로 문란한 것을 의미하고, 성폭력의 위험을 높이는 행동이었다는 식의 몰상식한 발언을 공적인 기관인 해바라기 센터에서 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소수자 인권감수성이 부족한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최근에는 소년보호시설에서 생활 중인 여성 성소수자 청소년으로부터 시설 내에서는 단지 머기가 짧다는 이유만으로도 여러 가지 차별에 노출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쉼터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요주의 인물로 간주를 하고 대우를 하는 것처럼, 소년보소시설에서도 젠더표현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도 선제적인 차별을 당하게 되는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입니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향한 차별도 심각합니다. 최근 온라인상에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발언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실제로 사이버 괴롭힘을 당한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띵동에 상담을 요청하는 건수가 매우 늘어났습니다. 진짜 여성과 가짜 여성을 가르고 폄하하고 차별하는 일들이 횡행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일부 여성운동의 계열에서도 동참을 하고 있는 점이 여성운동과 연대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더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젠더이분법적으로 고정된 성역할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성소수자들이 받는 차별들은 구조적으로 성평등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성평등이라는 주제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삭제하고 무시하는 것은 성평등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를 빼고 성평들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정부가 혐오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청소년 성소수자의 존재를 외면하고 있지만, 이미 현장의 교사와 상담사와 청소년기관 종사자들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나고 있으며,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호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눈감고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치워버려야 할 골칫덩이도 아니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거리도 아닙니다. 당연히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시민이며 정부 복지혜택을 누려야하는 똑같은 청소년입니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계속해서 무시하고 배제하는 것은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자꾸 코너로 몰아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띵동이 상담과 지원의 영역에서 최대한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과의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역부족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정부부처가 오히려 극우 보수세력이나 일부 기독교계의 압박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실제적인 심리적 타격을 입고 있고, 이러한 내용의 보도가 나오면 즉각적으로 상담의 건수가 증가하고 관련한 내용의 문의가 늘어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성소수자 이슈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 성소수자 혐오세력들이 해당 부처에 대해 조직적으로 업무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공무원들이 이로 인해 곤란을 겪고 어려움을 호소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전화테러를 하는 혐오세력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방법을 찾아야 할 문제이지,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우리 성소수자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아직 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하니 성소수자에게 기다려달라고 이야기 할 때가 아닙니다.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정부가 대화해서 설득해야 할 곳은 혐오세력들입니다.
성소수자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의무는 정부에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는 정부가 만들어 나가야 할 일입니다. 더 이상 성소수자들에게 기다리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무책임한 언행을 멈추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할 것을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