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2일,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열린 故 육우당 추모 문화제에 참석해 부스를 운영하고 발언하였습니다.
영원히 열아홉에 멈춰있을 故 육우당 현석이를 추모하며 나눈 발언문을 공유합니다. 따뜻한 봄날에 광화문광장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활동하는 정욜입니다. 장애인권활동가들과 성소수자들이 함께 모여 추모와 연대를 할 수 있어 매우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죽음은 슬픔과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들의 죽음은 더욱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었다면, 관심을 더 기울일 수 있었다면, 차별과 혐오가 없었다면, 죽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우당의 본명은 O현석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술,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를 자신의 유일한 친구로 여긴 육우당이라는 이름이 익숙하겠지만 오늘은 현석이라고 불러봅니다. 현석이는 저에게 여전히 남은 빚이고, 4월이 되면 흐릿해지는 그를 잊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떠올립니다. 현석이는 지금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이었습니다. 그와 보낸 시간은 짧은 편이지만,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행성인의 청소년 회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와의 인연이 궁금하시죠? 그는 자신의 담배 값을 모아 돈 2만원과 함께 편지를 보낸 친구였습니다. 편지에 돌돌말린 후원금을 보낸 게 매우 특별해서 그를 만나고 싶어 사무실에 놀러오라고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단체 송년회에서 처음으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예쁘장한 얼굴과 개구진 말을 썼던 그는 그 당시 몇 안 되는 청소년 회원이어서 다른 회원들의 이쁨을 독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행성인의 이성애자 청소년 회원도 함께 있었는데, 지금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것을 보면 정말 시간이 빨리 흐른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참 열악했습니다. 5평 남짓한 사무실이 뭐 그리 좋다고 일을 끝내고 나면 늘 찾아왔습니다. 밤에 일했기 때문에 아침에 찾아와 난로를 켜놓고, 맨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자도 편하다고 했습니다.
현석이는 늘 분노했습니다. 당시는 엑스존이라는 게이포털사이트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어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없게끔 하는 행정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엑스존 운영자는 항의의 의미로 웹사이트를 운영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며 홈페이지를 폐쇄했습니다. 당시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상의 청소년유해매체물 개별심의기준에 ‘동성애’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기준은 인터넷 검열을 강화했고, 동성애는 인터넷 상에서 퇴폐2등급으로 낙인찍히기도 했습니다. 이 법조항의 폐지를 위해 거리에서, 학교에서 서명을 받고 집회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늘 무지개 깃발을 몸에 두르며 즐거워했습니다. 반전집회에 함께 했고, 거리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2003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서 동성애를 차별적으로 명시한 조항이 성소수자들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표현의 자유 등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한 행위라고 선언하고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이 조항의 삭제를 권고하였습니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바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같은 해 4월7일 항의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성명서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은 청소년들의 성정체성 혼란을 초래할 것이고, 가정의 붕괴나 에이즈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4월25일 새벽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현석이가 사무실에서 자살을 했습니다. 그는 유서에 “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죽음이 아깝지 않다”고 썼습니다. 그의 유서 옆에는 성모마리아상과 십자가가 남겨져 있었고, 소주 한 병과 한복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행성인에게 수십만 원의 돈을 남기고 엄마에게 매월 후원금을 보내달라는 부탁도 유서에 남겼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더 커지고 싸워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4월24일만 해도 사무실에서 노동절 참가단 준비를 함께 하고, 5월에 있을 추모제를 함께 준비했었는데 그 사이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또 혼자 있었을 그 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현석이의 죽음이후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2004년 4월 청소년 유해매체물 개별심의기준에서 동성애 조항은 최종 삭제되었습니다.
14년이 지났습니다. 현석이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설립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떠올린 친구입니다. 보듬지 못했던 미안함에 조금이나마 빚을 갚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육우당들이 혐오와 차별이 날카롭기만 한 오늘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롱과 모욕 앞에 자신을 숨겨야 하고, 차별과 폭력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자신을 부정하고, 괴롭힘으로부터 힘들어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현실은 이제 구체적인 통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차별을 증명해야만 아픈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아파했는지,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차별의 경험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사회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제 죽음의 역사를 끊고, 연대의 힘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서 동성애 조항을 삭제했던 것처럼 이제는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학교성교육표준안을 폐지하고, 다양성과 인권이 보장받을 수 있는 학교와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추모와 애도는 정의로운 행동입니다.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때 흘렸던 눈물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고 가슴 깊이 새기고 있기에 커뮤니티의 힘으로 띵동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그의 시간은 열아홉에 멈춰있습니다. 추모와 애도를 넘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삶이 나아져야 합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불행한 사회는 정의롭지 못합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불행한 사회는 평등하지 않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불행한 사회는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불행한 사회는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불행한 사회는 인권이 보장받는 사회가 아닙니다. 동성애가 범죄로 인정받는 사회가 아니라, 차별로 고통 받는 사회가 아니라, 나답게 살 수 있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합니다.
육우당이 꿈꿨던 세상, 이제 우리가 만들어갑시다.
고맙습니다.
4월22일,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열린 故 육우당 추모 문화제에 참석해 부스를 운영하고 발언하였습니다.
영원히 열아홉에 멈춰있을 故 육우당 현석이를 추모하며 나눈 발언문을 공유합니다. 따뜻한 봄날에 광화문광장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활동하는 정욜입니다. 장애인권활동가들과 성소수자들이 함께 모여 추모와 연대를 할 수 있어 매우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죽음은 슬픔과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들의 죽음은 더욱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었다면, 관심을 더 기울일 수 있었다면, 차별과 혐오가 없었다면, 죽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우당의 본명은 O현석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술,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를 자신의 유일한 친구로 여긴 육우당이라는 이름이 익숙하겠지만 오늘은 현석이라고 불러봅니다. 현석이는 저에게 여전히 남은 빚이고, 4월이 되면 흐릿해지는 그를 잊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떠올립니다. 현석이는 지금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이었습니다. 그와 보낸 시간은 짧은 편이지만,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행성인의 청소년 회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와의 인연이 궁금하시죠? 그는 자신의 담배 값을 모아 돈 2만원과 함께 편지를 보낸 친구였습니다. 편지에 돌돌말린 후원금을 보낸 게 매우 특별해서 그를 만나고 싶어 사무실에 놀러오라고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단체 송년회에서 처음으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예쁘장한 얼굴과 개구진 말을 썼던 그는 그 당시 몇 안 되는 청소년 회원이어서 다른 회원들의 이쁨을 독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행성인의 이성애자 청소년 회원도 함께 있었는데, 지금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것을 보면 정말 시간이 빨리 흐른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참 열악했습니다. 5평 남짓한 사무실이 뭐 그리 좋다고 일을 끝내고 나면 늘 찾아왔습니다. 밤에 일했기 때문에 아침에 찾아와 난로를 켜놓고, 맨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자도 편하다고 했습니다.
현석이는 늘 분노했습니다. 당시는 엑스존이라는 게이포털사이트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어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없게끔 하는 행정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엑스존 운영자는 항의의 의미로 웹사이트를 운영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며 홈페이지를 폐쇄했습니다. 당시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상의 청소년유해매체물 개별심의기준에 ‘동성애’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기준은 인터넷 검열을 강화했고, 동성애는 인터넷 상에서 퇴폐2등급으로 낙인찍히기도 했습니다. 이 법조항의 폐지를 위해 거리에서, 학교에서 서명을 받고 집회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늘 무지개 깃발을 몸에 두르며 즐거워했습니다. 반전집회에 함께 했고, 거리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2003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서 동성애를 차별적으로 명시한 조항이 성소수자들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표현의 자유 등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한 행위라고 선언하고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이 조항의 삭제를 권고하였습니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바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같은 해 4월7일 항의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성명서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은 청소년들의 성정체성 혼란을 초래할 것이고, 가정의 붕괴나 에이즈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4월25일 새벽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현석이가 사무실에서 자살을 했습니다. 그는 유서에 “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죽음이 아깝지 않다”고 썼습니다. 그의 유서 옆에는 성모마리아상과 십자가가 남겨져 있었고, 소주 한 병과 한복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행성인에게 수십만 원의 돈을 남기고 엄마에게 매월 후원금을 보내달라는 부탁도 유서에 남겼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더 커지고 싸워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4월24일만 해도 사무실에서 노동절 참가단 준비를 함께 하고, 5월에 있을 추모제를 함께 준비했었는데 그 사이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또 혼자 있었을 그 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현석이의 죽음이후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2004년 4월 청소년 유해매체물 개별심의기준에서 동성애 조항은 최종 삭제되었습니다.
14년이 지났습니다. 현석이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설립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떠올린 친구입니다. 보듬지 못했던 미안함에 조금이나마 빚을 갚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육우당들이 혐오와 차별이 날카롭기만 한 오늘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롱과 모욕 앞에 자신을 숨겨야 하고, 차별과 폭력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자신을 부정하고, 괴롭힘으로부터 힘들어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현실은 이제 구체적인 통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차별을 증명해야만 아픈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아파했는지,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차별의 경험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사회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제 죽음의 역사를 끊고, 연대의 힘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서 동성애 조항을 삭제했던 것처럼 이제는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학교성교육표준안을 폐지하고, 다양성과 인권이 보장받을 수 있는 학교와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추모와 애도는 정의로운 행동입니다.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때 흘렸던 눈물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고 가슴 깊이 새기고 있기에 커뮤니티의 힘으로 띵동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그의 시간은 열아홉에 멈춰있습니다. 추모와 애도를 넘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삶이 나아져야 합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불행한 사회는 정의롭지 못합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불행한 사회는 평등하지 않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불행한 사회는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불행한 사회는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불행한 사회는 인권이 보장받는 사회가 아닙니다. 동성애가 범죄로 인정받는 사회가 아니라, 차별로 고통 받는 사회가 아니라, 나답게 살 수 있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