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오전 10시, 국회 앞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주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띵동도 참여하여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강하게 요구하였습니다.
아래에 보통 활동가의 발언문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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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일하는 보통입니다.
우선 21대 국회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를 환영합니다. 모든 소수자를 향한 차별에 반대하며 국회의 결단있는 제정을 촉구합니다.
법안이 발의된 걸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드는 한편 동시에 각오도 필요했습니다.
'또 학교에서 토론이 시작되겠구나.'
정치에서 성소수자 이슈가 나오면 꼭 학교나 논술학원에서 토론을 시킵니다. 차별금지법, 동성혼 합법화, 군대 내 성소수자 색출 찬성하니 반대하니?
성소수자 인구 추정을 보면 30명의 학생이 있는 교실에 적어도 1명은 성소수자가 있습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이 많기에 실제론 더 많을 거예요.
하지만 교실 안에선 당사자가 없다고 전제하고 태연하게 토론이 이루어집니다.
찬반을 나누고 반대의견과 혐오발언이 용인되는 그 시간이 성소수자 학생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그 토론시간 자체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차별의 시간입니다. 없는 존재가 되고 상처 받아도 숨죽여야 하는 것.
이게 바로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겪는 차별 현실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향한 조롱과 폭력, 성별표현에 따른 괴롭힘, 아우팅 문제를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다.
띵동에 접수되는 상담 중 폭력과 혐오표현 피해가 당연하게도 매우 많습니다.
혐오하는 가해자가 누구인지 보면 또래집단, 교사, 가족, 친척, 상담사 골고루 있습니다.
청소년을 둘러싼 모든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차별을 받아도 구제받을 안전망이 없는 상황입니다.
학교에서 성소수자인 게 원치 않게 알려져서, 혹은 의심을 받아서 괴롭힘을 당한 청소년에게 교사나 상담사가 쉽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너도 잘못한 게 있으니 참아라.'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수용 받지 않는 거 뻔히 알면서, 왜 조심하지 않고 들켰니.'라는 말입니다.
괴롭힘과 폭력에 노출된 사람이 왜 자기 잘못이란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이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성소수자 혐오 환경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자기가 가족, 학교, 경제와 주변 환경을 바꾸거나 선택할 자원이 부족하기에 폭력과 인권침해에서 벗어나기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고통이 반복되기 쉬운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살률은 비성소수자 청소년 자살률보다 4배에서 5배 가량 높습니다.
실제로 띵동에 가장 많이 접수되는 상담주제는 우울, 무기력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와 자살자해 위기입니다.
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차별금지법을 계속 보류할 수 있습니까?
최근에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인터뷰를 해서 청소년 성소수자 차별에 상황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요.
거기 댓글이 600~700개가 달려서 읽어봤습니다.
- ‘동성애는 인류의 적이다.’
- ‘중학교에 다니는 놈이 벌써부터 동성애자라니 기가 막힌다.’
- ‘성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다수의 우리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되어야 하냐. 다수의 우리 아이들 보호해야 한다.’
너무 진부하고 부당한 말들입니다. 성소수자 혐오 기독교 세력은 자기 논리 세우려고 '우리 아이들' 핑계 대지 마십시오.
청소년은 나약하고 미숙하고 보호해야할 대상이 아닙니다. 생각을 하는 시민이고 주체입니다.
만약 성소수자 존재를 알게 돼서 정체성 고민을 한다면 그건 합리적인 고민이겠죠.
이 사회가 규정한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의문을 품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너무 당연합니다.
진짜로 청소년을 생각한다면 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든 안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청소년들에게 '정상성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공포가 될 뿐입니다.
아무리 반대해도 성소수자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차별과 폭력에 취약한 환경에서 자란 성인 성소수자가 되겠죠.
그리고 당당하게 서서 이 사회를 비판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충분히 성장할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죽음에 내몰립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동료들을 잃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고립되어있을 청소년 성소수자들, 더 아프게 할 수 없습니다.
차별금지법 논의가 시작된 지 벌써 13년째 입니다. 발의됐다 엎어졌다만 6번째고요.
앞서 말씀드린 기사 댓글들 보면 5년 전, 10년 전에 혐오세력이 하던 말이랑 똑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충분히 이야기했고 이미 많은 공감을 끌어냈다 생각합니다.
이제는 성소수자 혐오 기독교 세력의 이 똑같은 말, 차별적인 말을 왜 10년 넘게 들어주고 있는지 해명을 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이 사회에 존재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합니다.
세상을 신뢰하며 성장할 권리를 박탈하지 마십시오.
반차별에 대한 사회적 토론, 합의 충분이 이루어졌으니까, 더이상 학교에 성소수자 찬반 토론거리 안 나오게 합시다.
성소수자들의 고통을 국가와 사회가 확실하게 책임지십시오. 차별금지법은 그 시작이고 정말 최소한의 출발선입니다.
국회의 책임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감사합니다.
7월 30일 오전 10시, 국회 앞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주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띵동도 참여하여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강하게 요구하였습니다.
아래에 보통 활동가의 발언문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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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일하는 보통입니다.
우선 21대 국회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를 환영합니다. 모든 소수자를 향한 차별에 반대하며 국회의 결단있는 제정을 촉구합니다.
법안이 발의된 걸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드는 한편 동시에 각오도 필요했습니다.
'또 학교에서 토론이 시작되겠구나.'
정치에서 성소수자 이슈가 나오면 꼭 학교나 논술학원에서 토론을 시킵니다. 차별금지법, 동성혼 합법화, 군대 내 성소수자 색출 찬성하니 반대하니?
성소수자 인구 추정을 보면 30명의 학생이 있는 교실에 적어도 1명은 성소수자가 있습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이 많기에 실제론 더 많을 거예요.
하지만 교실 안에선 당사자가 없다고 전제하고 태연하게 토론이 이루어집니다.
찬반을 나누고 반대의견과 혐오발언이 용인되는 그 시간이 성소수자 학생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그 토론시간 자체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차별의 시간입니다. 없는 존재가 되고 상처 받아도 숨죽여야 하는 것.
이게 바로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겪는 차별 현실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향한 조롱과 폭력, 성별표현에 따른 괴롭힘, 아우팅 문제를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다.
띵동에 접수되는 상담 중 폭력과 혐오표현 피해가 당연하게도 매우 많습니다.
혐오하는 가해자가 누구인지 보면 또래집단, 교사, 가족, 친척, 상담사 골고루 있습니다.
청소년을 둘러싼 모든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차별을 받아도 구제받을 안전망이 없는 상황입니다.
학교에서 성소수자인 게 원치 않게 알려져서, 혹은 의심을 받아서 괴롭힘을 당한 청소년에게 교사나 상담사가 쉽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너도 잘못한 게 있으니 참아라.'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수용 받지 않는 거 뻔히 알면서, 왜 조심하지 않고 들켰니.'라는 말입니다.
괴롭힘과 폭력에 노출된 사람이 왜 자기 잘못이란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이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성소수자 혐오 환경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자기가 가족, 학교, 경제와 주변 환경을 바꾸거나 선택할 자원이 부족하기에 폭력과 인권침해에서 벗어나기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고통이 반복되기 쉬운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살률은 비성소수자 청소년 자살률보다 4배에서 5배 가량 높습니다.
실제로 띵동에 가장 많이 접수되는 상담주제는 우울, 무기력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와 자살자해 위기입니다.
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차별금지법을 계속 보류할 수 있습니까?
최근에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인터뷰를 해서 청소년 성소수자 차별에 상황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요.
거기 댓글이 600~700개가 달려서 읽어봤습니다.
- ‘동성애는 인류의 적이다.’
- ‘중학교에 다니는 놈이 벌써부터 동성애자라니 기가 막힌다.’
- ‘성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다수의 우리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되어야 하냐. 다수의 우리 아이들 보호해야 한다.’
너무 진부하고 부당한 말들입니다. 성소수자 혐오 기독교 세력은 자기 논리 세우려고 '우리 아이들' 핑계 대지 마십시오.
청소년은 나약하고 미숙하고 보호해야할 대상이 아닙니다. 생각을 하는 시민이고 주체입니다.
만약 성소수자 존재를 알게 돼서 정체성 고민을 한다면 그건 합리적인 고민이겠죠.
이 사회가 규정한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의문을 품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너무 당연합니다.
진짜로 청소년을 생각한다면 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든 안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청소년들에게 '정상성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공포가 될 뿐입니다.
아무리 반대해도 성소수자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차별과 폭력에 취약한 환경에서 자란 성인 성소수자가 되겠죠.
그리고 당당하게 서서 이 사회를 비판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충분히 성장할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죽음에 내몰립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동료들을 잃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고립되어있을 청소년 성소수자들, 더 아프게 할 수 없습니다.
차별금지법 논의가 시작된 지 벌써 13년째 입니다. 발의됐다 엎어졌다만 6번째고요.
앞서 말씀드린 기사 댓글들 보면 5년 전, 10년 전에 혐오세력이 하던 말이랑 똑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충분히 이야기했고 이미 많은 공감을 끌어냈다 생각합니다.
이제는 성소수자 혐오 기독교 세력의 이 똑같은 말, 차별적인 말을 왜 10년 넘게 들어주고 있는지 해명을 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이 사회에 존재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합니다.
세상을 신뢰하며 성장할 권리를 박탈하지 마십시오.
반차별에 대한 사회적 토론, 합의 충분이 이루어졌으니까, 더이상 학교에 성소수자 찬반 토론거리 안 나오게 합시다.
성소수자들의 고통을 국가와 사회가 확실하게 책임지십시오. 차별금지법은 그 시작이고 정말 최소한의 출발선입니다.
국회의 책임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