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무지개백일장 수상작

소음공해 / 별, 2009년생, 목소리상

  우리 일상에는 자연스럽게, 당연한 듯 하고 있지만 언제부터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매일같이 느끼는 감정들도 언제부터 느낄 수 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경우도 비슷하다. 언제부턴가 가장 친근할 장소일 학교에서 이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소리들은 잔잔하게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문을 두드리는 듯한, 조금 성가신 소리였다. 하지만 이 소리들은 의식할수록 점점 커지고 다양해져 ‘소음’ 이 되었다. 존재하는 단어들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끔찍한 소리들이었다. 날카로운 포크로 그릇을 마구 긁어대는 소리 같기도 하고, 귀를 관통하는 마이크의 하울링 같기도 했다.

   우리 학교는 남다른 인성교육이 자랑인 학교였다. 복도를 걷기만 해도 허리를 직각으로 숙여 선생님들께 인사하는 학생들이 보이고, 외부교사가 방문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학생들의 인성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는, 그런 훌륭한 학교. 하지만 이 훌륭한 학교의 인성교육 안에 이 소음에 관련된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아마 어느 학교라도 그럴 것이다.

   쉬는 시간,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으면 들리는 소리들은 몇몇 학생들이 복도에 모여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소리, 과학 선생님이 내뱉는 썰렁한 농담에 까르르 웃는 학생들의 소리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들리는 것은 귀가 깨질 듯한 소음뿐이었다. 내가 귀를 막을 때 다른 아이들은 귀를 막지 않는다. 이 소음은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이 넓은 학교에서, 이 소음들은 오직 나에게만 들린다. 아마 나에게만 들릴 것이다. 소음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절대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걸 환청이라고 생각할 것이 뻔하다. 종례가 끝난 후, 기다렸다는 듯이 책가방을 메고 교문을 나가며 쓴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은 내게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둔 3분 34초짜리 최애곡만 들려주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조용한 우리 집으로 향했다.

   그까짓 소음쯤이야 그냥 이 악물고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못 들은 척 무시하다 보면 언젠가는 무감각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어느 정도 무감각해졌다. 소음들이 들려와도 당연한 듯 모른 척할 수 있게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이 소음들은 너무나도 흔하고 쉽게 발생하지만, 그 영향은 ‘어마무시’(어마어마하게 무시무시)하다. 층간소음으로 살인까지 일어났다는 뉴스 기사도 보이니 소음의 힘은 감히 무시할 수 없다. 이 소음들은 정말 오직 나에게만 들리는 걸까?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엄마 아빠께 말했다. 엄마 아빠는 이 소음들을 환청 취급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도 이 소음들을 듣고 있었다. 그 뒤로 우리 집에서 가끔 들렸던 소음들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난 조용한 우리 집에서 내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건 환청이 아니었다. 높낮이도, 세기도 모두 다른 이 소리들을 예민한 이들은 들을 수 있다. 소음이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이들이 내는 소리는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우리도 학교에서 즐거운 대화와 썰렁한 농담을 듣고 싶다. 우리도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


[심사위원 작품평] 

헤드셋만으로는 소음 공해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버티기 어렵습니다. 우리에겐 소수자를 외면하고 배제하는 이 시끄러운 소리로부터 안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소음이 사라져야 모두가 편안하게 대화하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별님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별님의 간절한 바람이 메아리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밀알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함께, 그 메아리를 만듭시다. 

심사위원 오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