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온전히 ‘나’가 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 글은 내가 ‘나’가 되는 경험을 하고 어떻게 그 경험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고 있는지를 담은 내 이야기이다.
나는 16살에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첫사랑이었던, 얼굴이 갸름하고 키가 크고 밴드 활동을 열심히 하던 아이가 그것을 깨우쳐 주었다. 성정체성을 확립하기 전에도 나는 성소수자에 대해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는, 그저 사랑으로 엮인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아마 어릴 적 읽었던 많은 책 덕분인 것 같다. 책 속에서 다름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경험했던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모든 차별은 부당하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편견 없는 청소년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한 번도 내가 여자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보편적인 것만이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이 나라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가정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은 너도나도 연애를 했다. 나에게 연애란 유행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나도 해보고 싶어서 남자아이들에게 고백도 해보고 내가 좋다는 아이와 연애도 해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과 함께 있으면 불편했다. 그들이 좋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남자에게 별로 끌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친구로서, TV 속의 연예인으로서는 좋았지만, 스킨십이나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고 너무나 어색했다. 친구들은 내가 남자랑 있을 때 느껴지는 어색함을 못 견디는 것이고 크면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라고 했지만 난 계속 어색하고 마음이 동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중학생이 되었다. 여중에 입학한 나는 초등학교 때보다 비교적 성숙해진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나 또한 생각이 더 많아졌고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된 과정은 매우 갑작스러웠지만 자연스러웠다. 내 친구의 친구였기 때문에 자주 마주쳤고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었다. 그 아이는 예뻤다. 얼굴이 하얗고 키도 큰 데다 웃을 때 눈꼬리가 휘어지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한번은 그 아이와 같이 친구의 머리에 엉킨 롤 빗을 풀어준 적이 있었는데, 심하게 엉켜서 우리 둘이 붙어 낑낑대는데도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 아이와 처음으로 가까이 밀착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을 했다. 보통 친구들과 있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뭔가 새로웠고 계속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자꾸 그 아이를 의식하고 어색하게 행동하는 나를 인식할 수 있었다. 남자아이들과 연애할 때는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었다. 그때 내 친구 중에는 여자친구가 있는 친구가 있었고 혈기 왕성한 사춘기 아이들이었던 우리는 자주 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나는 그 친구에게 “내가 ○○이한테 심장이 좀 두근거리고 걔 앞에 서면 당황하는데 이게 좋아한다는 감정인가?”라고 물어봤다. 친구는 상기된 표정으로 나에게 걔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물었다. 그 아이를 볼 때면 내 심장이 한산한 강가의 파도처럼 잔잔하게 떨렸다. 잔잔한 떨림이 계속된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 아이가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인사하면 되는데 인사할 타이밍을 계산했다. 나는 그대로 대답했고 그 친구는 “너 완전 반한 것 같은데? 너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그 감정을 잘 분석해 봐”라고 했다.
그날은 내내 그 아이 생각을 했다. 무의식중에 자주 실실거리며 웃음을 흘렸고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하는 와중에도 그 애와 사귀게 되면 어떨지 상상했고 내가 정말 그 애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 백예린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그 애의 말을 따라 들어본 노래의 가사가 모두 첫사랑에 빠진 내 이야기 같았다. 토할 것같이 어지럽다가 웃음이 나는 기이한 첫사랑의 증세였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마음이 무척 들뜬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안타깝게도 내 첫사랑은 쌍방 사랑이 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첫사랑이라는 혼미한 감정에 휩싸여 그 아이의 감정은 생각하지 못하고 냅다 고백을 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의 가사를 넣어 애정이 가득 담긴 부담스러운 손 편지를 썼고 결국 거절당했다. 나의 첫사랑은 씁쓸하고 설레는 경험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계속 여자만을 좋아했고 어느새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으로 스스로 정체화하게 되었다. 학교에는 성숙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다름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혐오가 섞인 말을 하곤 했다. 워낙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라 정체화를 하기 전에도 그런 말을 은연중에 들으면 따지고 싶고 그들이 가진 생각을 고쳐주고 싶었는데 나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인식한 뒤에 그런 말들을 들으니, 화가 나기보다 상처로 다가왔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레즈비언, 게이 등의 단어가 나오면 흠칫 놀라게 되었고 퀴어 퍼레이드를 변태들의 축제라고 묘사하는 아이의 말에 화가 났다.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를 부정하는 그들의 말은 내게 혼란과 두려움을 주었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 아웃팅이 될까 봐 두려웠고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면박을 줄까 봐 두려웠다. 대체 내 또래 사람들에게 성소수자란 어떤 의미로 인식되는지 궁금해졌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손을 잡고 있던 아이들에게 장난을 친답시고 “너희 레즈비언이냐? 징그럽게 손을 잡니~ 여자들끼리”라고 했고 여자 연예인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왜 여자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들에게 성소수자란 희화화하기 좋은 대상, 다르니까 싫어해도 되는 대상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슬펐다. 내 존재가 이상하게 여겨지고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동시에 오기가 생겼다. 그들의 편협한 생각을 지우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없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친구들이 혐오 섞인 발언을 할 때면 바로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냐고, 그저 좋아하는 대상이 같은 성일 뿐인 사람인데 왜 차별과 혐오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이상하니까, 다르니까, 더럽잖아’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금방 인정했다. 내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성소수자를 차별해도 되는 대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혐오의 말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치가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점점 이상한 용기가 샘솟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성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간다는 것은 평소 주변에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하는 나에겐 힘든 일이었다.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나 여자 좋아해”라고 이야기했다. 입을 떼기 전까지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죄를 털어놓는 것같이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말하자마자 엄청난 후련함과 자유가 내 몸에서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나다움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저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해방감을 느낀다니 씁쓸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커밍아웃했을 때 주변 친구들은 내 정체성을 이상하게 보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래서 난 공적인 자리에서도 그 짜릿한 자유를 느끼고 싶어졌다. 나다워지고 싶었다. 매 기말고사가 끝나면 생활기록부에 쓸 내용을 마련하기 위해 각 과목에서 자유 주제로 발표하곤 한다. 지난해 나는 기말고사가 끝나고 발표가 한창이던 때 영어 발표를 어떤 주제로 할지 고민하다가 차별받는 해외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여러 사례에 대한 소개와 함께 피피티를 무지개로 가득 채웠다.
피피티를 화면에 띄우고 반 친구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흠칫하며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레즈비언임을 아는 친구들은 주제가 나답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발표를 시작했고 혹시 내가 성소수자라고 소문이 나거나 혐오 섞인 질문을 받을까 두려웠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졌다. 묘한 쾌감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뱃속에서 짜릿한 해방감이 꿈틀거렸다. 발표를 마치고 선생님께서는 정말 유익한 발표였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직은 우리나라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지만 앞으로 좋아졌으면 한다고 덧붙이셨다. 친구들도 내 용기가 대단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학교라는 작은 공동체 속에서 일어난 하나의 일이었지만 나에겐 큰 성장 경험과 희망의 사인으로 다가왔고 앞으로 더 큰 자리에서 나와 내 성소수자 이웃들의 자유에 대해 외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발표 이후로 내가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았다. 지금까지 다양한 서명운동에 참여했고 일상에서 친구들에게 인권 교육을 하고 있다.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지고 혐오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우리말로 당당히 성소수자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싶다. 다른 나라의 언어나 익명 뒤에 숨지 않은 채 내 이름을 내걸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인 우리를 부당한 말들로 구속하고 혐오하지 말라고 외칠 수 있을 때 비로소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될 것 같다. 내가 자유로워지면 다른 퀴어 이웃들에게도 나다워지는 순간이 얼마나 짜릿한지, 그 해방감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해주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하나의 도전이자 무지갯빛 미래를 향해 내딛는 하나의 발걸음이라고 생각해 도전하게 된 것이다.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될 내 도전은 점점 더 쉽지 않을 것이고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멈출 수 없다. 짜릿한 해방감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나답게 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초록이님의 글이 속도감 있는 고유의 문체와 호흡으로 읽는 이를 이끌어가는 힘을 지녔다고 보았습니다. 담백하고 거침없는 문장은 솔직하고도 적극적인 한 인물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그러한 인물의 특징은 다시 글 전체의 성장 서사를 뒷받침해줍니다. 내용과 형식의 조응에서 비롯되는 글의 완성도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한편, 용기 있는 행동의 서사로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이었습니다. 심사위원 수빈 |
살면서 온전히 ‘나’가 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 글은 내가 ‘나’가 되는 경험을 하고 어떻게 그 경험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고 있는지를 담은 내 이야기이다.
나는 16살에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첫사랑이었던, 얼굴이 갸름하고 키가 크고 밴드 활동을 열심히 하던 아이가 그것을 깨우쳐 주었다. 성정체성을 확립하기 전에도 나는 성소수자에 대해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는, 그저 사랑으로 엮인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아마 어릴 적 읽었던 많은 책 덕분인 것 같다. 책 속에서 다름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경험했던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모든 차별은 부당하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편견 없는 청소년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한 번도 내가 여자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보편적인 것만이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이 나라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가정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은 너도나도 연애를 했다. 나에게 연애란 유행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나도 해보고 싶어서 남자아이들에게 고백도 해보고 내가 좋다는 아이와 연애도 해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과 함께 있으면 불편했다. 그들이 좋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남자에게 별로 끌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친구로서, TV 속의 연예인으로서는 좋았지만, 스킨십이나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고 너무나 어색했다. 친구들은 내가 남자랑 있을 때 느껴지는 어색함을 못 견디는 것이고 크면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라고 했지만 난 계속 어색하고 마음이 동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중학생이 되었다. 여중에 입학한 나는 초등학교 때보다 비교적 성숙해진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나 또한 생각이 더 많아졌고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된 과정은 매우 갑작스러웠지만 자연스러웠다. 내 친구의 친구였기 때문에 자주 마주쳤고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었다. 그 아이는 예뻤다. 얼굴이 하얗고 키도 큰 데다 웃을 때 눈꼬리가 휘어지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한번은 그 아이와 같이 친구의 머리에 엉킨 롤 빗을 풀어준 적이 있었는데, 심하게 엉켜서 우리 둘이 붙어 낑낑대는데도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 아이와 처음으로 가까이 밀착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을 했다. 보통 친구들과 있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뭔가 새로웠고 계속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자꾸 그 아이를 의식하고 어색하게 행동하는 나를 인식할 수 있었다. 남자아이들과 연애할 때는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었다. 그때 내 친구 중에는 여자친구가 있는 친구가 있었고 혈기 왕성한 사춘기 아이들이었던 우리는 자주 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나는 그 친구에게 “내가 ○○이한테 심장이 좀 두근거리고 걔 앞에 서면 당황하는데 이게 좋아한다는 감정인가?”라고 물어봤다. 친구는 상기된 표정으로 나에게 걔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물었다. 그 아이를 볼 때면 내 심장이 한산한 강가의 파도처럼 잔잔하게 떨렸다. 잔잔한 떨림이 계속된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 아이가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인사하면 되는데 인사할 타이밍을 계산했다. 나는 그대로 대답했고 그 친구는 “너 완전 반한 것 같은데? 너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그 감정을 잘 분석해 봐”라고 했다.
그날은 내내 그 아이 생각을 했다. 무의식중에 자주 실실거리며 웃음을 흘렸고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하는 와중에도 그 애와 사귀게 되면 어떨지 상상했고 내가 정말 그 애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 백예린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그 애의 말을 따라 들어본 노래의 가사가 모두 첫사랑에 빠진 내 이야기 같았다. 토할 것같이 어지럽다가 웃음이 나는 기이한 첫사랑의 증세였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마음이 무척 들뜬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안타깝게도 내 첫사랑은 쌍방 사랑이 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첫사랑이라는 혼미한 감정에 휩싸여 그 아이의 감정은 생각하지 못하고 냅다 고백을 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의 가사를 넣어 애정이 가득 담긴 부담스러운 손 편지를 썼고 결국 거절당했다. 나의 첫사랑은 씁쓸하고 설레는 경험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계속 여자만을 좋아했고 어느새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으로 스스로 정체화하게 되었다. 학교에는 성숙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다름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혐오가 섞인 말을 하곤 했다. 워낙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라 정체화를 하기 전에도 그런 말을 은연중에 들으면 따지고 싶고 그들이 가진 생각을 고쳐주고 싶었는데 나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인식한 뒤에 그런 말들을 들으니, 화가 나기보다 상처로 다가왔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레즈비언, 게이 등의 단어가 나오면 흠칫 놀라게 되었고 퀴어 퍼레이드를 변태들의 축제라고 묘사하는 아이의 말에 화가 났다.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를 부정하는 그들의 말은 내게 혼란과 두려움을 주었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 아웃팅이 될까 봐 두려웠고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면박을 줄까 봐 두려웠다. 대체 내 또래 사람들에게 성소수자란 어떤 의미로 인식되는지 궁금해졌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손을 잡고 있던 아이들에게 장난을 친답시고 “너희 레즈비언이냐? 징그럽게 손을 잡니~ 여자들끼리”라고 했고 여자 연예인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왜 여자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들에게 성소수자란 희화화하기 좋은 대상, 다르니까 싫어해도 되는 대상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슬펐다. 내 존재가 이상하게 여겨지고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동시에 오기가 생겼다. 그들의 편협한 생각을 지우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없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친구들이 혐오 섞인 발언을 할 때면 바로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냐고, 그저 좋아하는 대상이 같은 성일 뿐인 사람인데 왜 차별과 혐오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이상하니까, 다르니까, 더럽잖아’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금방 인정했다. 내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성소수자를 차별해도 되는 대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혐오의 말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치가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점점 이상한 용기가 샘솟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성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간다는 것은 평소 주변에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하는 나에겐 힘든 일이었다.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나 여자 좋아해”라고 이야기했다. 입을 떼기 전까지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죄를 털어놓는 것같이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말하자마자 엄청난 후련함과 자유가 내 몸에서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나다움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저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해방감을 느낀다니 씁쓸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커밍아웃했을 때 주변 친구들은 내 정체성을 이상하게 보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래서 난 공적인 자리에서도 그 짜릿한 자유를 느끼고 싶어졌다. 나다워지고 싶었다. 매 기말고사가 끝나면 생활기록부에 쓸 내용을 마련하기 위해 각 과목에서 자유 주제로 발표하곤 한다. 지난해 나는 기말고사가 끝나고 발표가 한창이던 때 영어 발표를 어떤 주제로 할지 고민하다가 차별받는 해외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여러 사례에 대한 소개와 함께 피피티를 무지개로 가득 채웠다.
피피티를 화면에 띄우고 반 친구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흠칫하며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레즈비언임을 아는 친구들은 주제가 나답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발표를 시작했고 혹시 내가 성소수자라고 소문이 나거나 혐오 섞인 질문을 받을까 두려웠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졌다. 묘한 쾌감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뱃속에서 짜릿한 해방감이 꿈틀거렸다. 발표를 마치고 선생님께서는 정말 유익한 발표였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직은 우리나라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지만 앞으로 좋아졌으면 한다고 덧붙이셨다. 친구들도 내 용기가 대단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학교라는 작은 공동체 속에서 일어난 하나의 일이었지만 나에겐 큰 성장 경험과 희망의 사인으로 다가왔고 앞으로 더 큰 자리에서 나와 내 성소수자 이웃들의 자유에 대해 외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발표 이후로 내가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았다. 지금까지 다양한 서명운동에 참여했고 일상에서 친구들에게 인권 교육을 하고 있다.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지고 혐오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우리말로 당당히 성소수자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싶다. 다른 나라의 언어나 익명 뒤에 숨지 않은 채 내 이름을 내걸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인 우리를 부당한 말들로 구속하고 혐오하지 말라고 외칠 수 있을 때 비로소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될 것 같다. 내가 자유로워지면 다른 퀴어 이웃들에게도 나다워지는 순간이 얼마나 짜릿한지, 그 해방감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해주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하나의 도전이자 무지갯빛 미래를 향해 내딛는 하나의 발걸음이라고 생각해 도전하게 된 것이다.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될 내 도전은 점점 더 쉽지 않을 것이고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멈출 수 없다. 짜릿한 해방감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나답게 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초록이님의 글이 속도감 있는 고유의 문체와 호흡으로 읽는 이를 이끌어가는 힘을 지녔다고 보았습니다. 담백하고 거침없는 문장은 솔직하고도 적극적인 한 인물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그러한 인물의 특징은 다시 글 전체의 성장 서사를 뒷받침해줍니다. 내용과 형식의 조응에서 비롯되는 글의 완성도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한편, 용기 있는 행동의 서사로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이었습니다.
심사위원 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