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존재를 부정당했다. 그것도 연속으로 세 차례나. 그 일의 계기는 학교 토론 동아리였다. 내가 생활기록부에 몇 줄 정도 더 쓰이는 것은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들어간, 그 토론 동아리. 토론 동아리에서는 담당 선생님과 학생들이 회의하여 정한 주제로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그 일이 그렇게 끔찍한 결말을 가져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은 전혀 예상치 못하게 ‘성소수자’를 주제로 토론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성소수자라는 주제가 찬반 토론을 할 수 있는 주제도 아니거니와, 토론 참여자가 되어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말 한마디 못할 것이 뻔한 그 주제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작은 벽장 속 성소수자였고, 반대하는 이유는 감히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 동아리는 그렇게 ‘성소수자’를 주제로 토론하게 되었다. 내가 ‘찬성’ 편이 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내 가장 친한 단짝 친구가 ‘반대’ 편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순간적으로 빠질까도 생각했지만 나는 이왕 토론하게 된 거, 최선을 다해서 하고 오겠다고 생각했다. 내 실수였다. 내 결심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단짝 친구가 진지한 얼굴로 혐오 발언을 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나는 그날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토론이니 준비한 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나는 그런 거 좀 이상한 것 같아.” 그 말을 하굣길에서 들었을 때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징그럽잖아…….” 나는 그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를 겨냥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은 위로가 되기는커녕 더 큰 상처로 다가왔다. 그게 첫 번째 부정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무력히 울었다. 엄마께서 내게 물어왔다. 내가 학교에서 누굴 두들겨 패고 왔음 모를까, 학교에서 울며 돌아온 날은 거의 없었으니까. 엄마는 걱정스럽게 물으셨다. “엄마는 다 이해할 수 있어.”, “네가 말해야 도와줄 수 있어. 오늘 학원 가지 말고 얘기해 보자.” 그 말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 내 두 번째 실수였다. 엄마를 믿은 것, 울면서 털어놓아야 했던 것. 엄마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입으로는 알겠다고 말했지만,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를 흔들어 놓고 내가 다 털어놓게 만들어 놓고, 아무런 위로도 공감의 말도 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다음날부터 갑작스레 내게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남자친구는 생겼니?’를 자꾸만 물어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날 역시 학원에 갈 수 없었다.
세 번째 부정은 나를 정말이지 바닥으로 처박는 것 같았다. 죽을까 생각했다. 이번 주인공은 내가 줄곧 짝사랑했던 여자애. 나는 두 번의 상처를 받고 그 애와 놀러 다니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애가 갑자기 말을 꺼내오는 게 아닌가. “너네 토론 동아리, 퀴어들 주제로 토론했다며.” 머리가 띵했다. 무슨 말을 들을지 두려웠다. “진짜 힘들었겠다. 억지로 찬성으로 토론하느라.”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파악하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들려오는, 내가 사랑했던 그 애의 높은 웃음소리에 나는 그대로… 무방비하게 상처를 받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반대’ 편 의견을 친구 목소리로 듣는다거나, 마음속으로는 짐작하고 있었던 부모님의 생각을 듣는 것보다, 여태껏 내가 나답게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질타를 다 합친 것과 비교도 못 할 정도로 쓰라렸다. 나는 그러고도 몇 개월 동안 그 아이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했다.
제일 힘든 건 분명 그런 말들을 들었음에도 내가 아직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기간 나는 정말 피폐 그 자체였다. 심각하게 스트레스받는 바람에 입원까지 하고, 정말 죽을까도 생각했었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 죄가 된다면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나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나 보다. 더 가라앉을 바닥도, 더 나아질 희망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나를 받아 들여주는 좋은 친구와 함께 있다. 가족들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고, 더 이상 ‘남자친구’ 소리도 그렇게 듣지 않는다.
물론 나는 아직 아물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여전히 죽을 생각도 든다. 나는 그때보다는 많이 내면의 성장을 겪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 간절히 바라는 것은 어린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너는 잘못되지 않아’, ‘그리고 너를 사랑해’라는 사랑의 말을 건네줄 사람이 있기를. 어린 새싹들이 사랑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 죽지 않기를.
한때 ‘죽는 게 나아’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소중한 사람들이 이제 많아진 나는 알고 있다. 살아만 있다면 행복은 반드시 너희를 찾아서 올 테니까. 그것이 오래 걸릴 수 있고 그 과정이 아플 수 있지만 기억하자. 이 메시지가 성소수자가 맞든 아니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모든 학생들(나를 포함해서)에게 닿을 수 있기를. 미래에는 이런 메시지를 전달할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라이라님의 글에서 '부정'에 관한 섬세한 기록과, 그럴수록 선명히 드러나는 '사랑'의 힘을 느꼈습니다. '학교 토론 동아리'라는 시공간을 둘러싼 숨막히는 기운과 두려움, 단짝 친구, 엄마, 그리고 짝사랑의 '당신'에게서 받은 계속되는 아픔과 상처가 결국 '살아 있음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슬프지만 아름다웠습니다. 타인에 의한 '부정'이 우리를 '부정'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해서 상처받았으나 '사랑'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라이라님의 마음은 기어코 '부정'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사위원 다랴 |
나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존재를 부정당했다. 그것도 연속으로 세 차례나. 그 일의 계기는 학교 토론 동아리였다. 내가 생활기록부에 몇 줄 정도 더 쓰이는 것은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들어간, 그 토론 동아리. 토론 동아리에서는 담당 선생님과 학생들이 회의하여 정한 주제로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그 일이 그렇게 끔찍한 결말을 가져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은 전혀 예상치 못하게 ‘성소수자’를 주제로 토론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성소수자라는 주제가 찬반 토론을 할 수 있는 주제도 아니거니와, 토론 참여자가 되어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말 한마디 못할 것이 뻔한 그 주제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작은 벽장 속 성소수자였고, 반대하는 이유는 감히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 동아리는 그렇게 ‘성소수자’를 주제로 토론하게 되었다. 내가 ‘찬성’ 편이 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내 가장 친한 단짝 친구가 ‘반대’ 편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순간적으로 빠질까도 생각했지만 나는 이왕 토론하게 된 거, 최선을 다해서 하고 오겠다고 생각했다. 내 실수였다. 내 결심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단짝 친구가 진지한 얼굴로 혐오 발언을 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나는 그날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토론이니 준비한 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나는 그런 거 좀 이상한 것 같아.” 그 말을 하굣길에서 들었을 때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징그럽잖아…….” 나는 그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를 겨냥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은 위로가 되기는커녕 더 큰 상처로 다가왔다. 그게 첫 번째 부정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무력히 울었다. 엄마께서 내게 물어왔다. 내가 학교에서 누굴 두들겨 패고 왔음 모를까, 학교에서 울며 돌아온 날은 거의 없었으니까. 엄마는 걱정스럽게 물으셨다. “엄마는 다 이해할 수 있어.”, “네가 말해야 도와줄 수 있어. 오늘 학원 가지 말고 얘기해 보자.” 그 말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 내 두 번째 실수였다. 엄마를 믿은 것, 울면서 털어놓아야 했던 것. 엄마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입으로는 알겠다고 말했지만,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를 흔들어 놓고 내가 다 털어놓게 만들어 놓고, 아무런 위로도 공감의 말도 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다음날부터 갑작스레 내게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남자친구는 생겼니?’를 자꾸만 물어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날 역시 학원에 갈 수 없었다.
세 번째 부정은 나를 정말이지 바닥으로 처박는 것 같았다. 죽을까 생각했다. 이번 주인공은 내가 줄곧 짝사랑했던 여자애. 나는 두 번의 상처를 받고 그 애와 놀러 다니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애가 갑자기 말을 꺼내오는 게 아닌가. “너네 토론 동아리, 퀴어들 주제로 토론했다며.” 머리가 띵했다. 무슨 말을 들을지 두려웠다. “진짜 힘들었겠다. 억지로 찬성으로 토론하느라.”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파악하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들려오는, 내가 사랑했던 그 애의 높은 웃음소리에 나는 그대로… 무방비하게 상처를 받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반대’ 편 의견을 친구 목소리로 듣는다거나, 마음속으로는 짐작하고 있었던 부모님의 생각을 듣는 것보다, 여태껏 내가 나답게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질타를 다 합친 것과 비교도 못 할 정도로 쓰라렸다. 나는 그러고도 몇 개월 동안 그 아이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했다.
제일 힘든 건 분명 그런 말들을 들었음에도 내가 아직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기간 나는 정말 피폐 그 자체였다. 심각하게 스트레스받는 바람에 입원까지 하고, 정말 죽을까도 생각했었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 죄가 된다면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나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나 보다. 더 가라앉을 바닥도, 더 나아질 희망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나를 받아 들여주는 좋은 친구와 함께 있다. 가족들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고, 더 이상 ‘남자친구’ 소리도 그렇게 듣지 않는다.
물론 나는 아직 아물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여전히 죽을 생각도 든다. 나는 그때보다는 많이 내면의 성장을 겪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 간절히 바라는 것은 어린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너는 잘못되지 않아’, ‘그리고 너를 사랑해’라는 사랑의 말을 건네줄 사람이 있기를. 어린 새싹들이 사랑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 죽지 않기를.
한때 ‘죽는 게 나아’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소중한 사람들이 이제 많아진 나는 알고 있다. 살아만 있다면 행복은 반드시 너희를 찾아서 올 테니까. 그것이 오래 걸릴 수 있고 그 과정이 아플 수 있지만 기억하자. 이 메시지가 성소수자가 맞든 아니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모든 학생들(나를 포함해서)에게 닿을 수 있기를. 미래에는 이런 메시지를 전달할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라이라님의 글에서 '부정'에 관한 섬세한 기록과, 그럴수록 선명히 드러나는 '사랑'의 힘을 느꼈습니다. '학교 토론 동아리'라는 시공간을 둘러싼 숨막히는 기운과 두려움, 단짝 친구, 엄마, 그리고 짝사랑의 '당신'에게서 받은 계속되는 아픔과 상처가 결국 '살아 있음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슬프지만 아름다웠습니다. 타인에 의한 '부정'이 우리를 '부정'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해서 상처받았으나 '사랑'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라이라님의 마음은 기어코 '부정'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사위원 다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