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떠올리고 학교 안의 ‘나’를 연관 지을 때 필연적으로 떠오르는 순간들과 감정들, 눈빛들이 있다. 그 기억의 단편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이룬다.
고등학교 2학년 사회문화 시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배울 때, 우리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에는 어디에도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들어 있지 않았다. 모욕적이라고 느꼈다. 나는 ‘성소수자’로서 분명히 힘들었는데, 힘들어하는 소중한 내 친구들을 너무 많이 봤는데 교과서에선 나와 내 친구들이 완벽하게 지워진 기분이었다.
어른들은, 그중에서도 학교 안의 어른들은 내게 항상 불신의 대상이었다. 특히 나는 6년 내내 기독교 미션스쿨을 다녔기 때문에 더더욱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정말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는데, 전부 믿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항상 두려웠다. 정말 좋은 선생님들조차도 더 많은 ‘나’를 이야기하면 순식간에 다른 얼굴을 보여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리 좋아하는 선생님이어도 속으로 자꾸 비꼬게 됐다. 저분도 어차피 ‘진짜의’ 나는 안 좋아하겠지. 놀라겠지. 어떤 얼굴을 보일까. 실제로 많은 선생님들은 내 기대를 자주 저버리셨다. 나는 항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들의 농담에,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에 가장 크게 무너졌다. 매번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의심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좋아하다가 결국에는 실망하는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했다.
나의 지난 5년은 그 과정의 지긋지긋한 반복이었고, 나는 나의 에너지를 잃지 않기 위해 정신을 무장했다. ‘내가 그들을 깊이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해서 굳이 그들에게 커밍아웃을 할 필요도, 커밍아웃하는 상상을 할 필요도 없다. 인간은 다면성을 띠기 때문에 좋은 사람도 나쁜 면을 가질 수 있다.’ 무사히 제정신으로 학교를 다니려고 이 두 문장을 매일매일 주문처럼 외웠다. 그동안 내 정체성을 굳이 드러낼 필요와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 대충 맞춰주는 법, 호응하는 법도 체득했다.
선생님들을 내내 불신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애들이랑 있을 때는 집단의 분위기와 애들 개개인의 태도를 좀 더 예민하게 감각해야 했다. 학교에서 자꾸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 얘길 늘어놓는 나를, 멋있는 동아리 선배 언니 얘길 꺼내는 나를, 더 나아가 이따금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발표하고, 다양성에 대해 발표하는 나를 보며 어떤 친구들은 내가 자기들과 다르다는 걸 얼핏 느끼지만, 그 사실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다름을 적확한 단어로 명명하긴 부담스러워해도 내가 그들의 ‘우리’가 아닐 때 우리는 다 같이 느낄 수 있었다.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의 여자친구가 되고 싶다고, 결혼하고 싶다고 장난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언니가 너무 멋지다고 나도 결혼하고 싶다고 얘기하다가 나중에는 매번 의문을 갖는 친구들이 귀찮아서 그냥 그 말을 삼켰다.
어떤 친구들과는 서로를 어렵지 않게 알아봤다. 중1 때 정체화한 이후 5년 조금 넘게 학교를 다니면서 정말 많은 커밍아웃을 했다. 처음에는 손에서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었다. 카카오톡으로 말을 빙빙 돌리다 쏟아내다시피 했다. 그다음부터는 훨씬 익숙해졌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는 기준은 단순했다. ‘안전함’이 거의 전부였다. 그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친구들도 만났다. 고1 겨울방학에 가장 친한 중학교 친구들 몇에게 커밍아웃을 했는데 걔네가 전부 아무렇지 않게 받아줬다. 집단 내에서 모두가 나의 지향성을 알고 있는데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전과 완벽히 똑같이 대해주는 경험, 안전함에서 비롯된 그 거대한 안정감은 진짜로 끝내줬다. 일상은 계속 흔들리고 불안했는데 걔네를 생각하면 언제나 좀 나아졌다. 아침에 내 휴대폰의 알람을 대신 꺼주는 엄마를 혹시 퀴어 콘텐츠 관련 팝업이 뜰까 봐 짜증스럽게 저지할 때, 읽고 싶은 퀴어 서적을 제목 때문에, 표지 때문에 사지 못할 때, 혹은 몰래 사서 몰래 보관할 때 느끼는 약간의 죄책감들은 걔네를 만날 때 무제한적으로 해방됐다.
커밍아웃을 받기도 많이 받았다. ‘걸어 다니는 커밍아웃’도 아니고 그냥 앉아서 커밍아웃하는 수준이어서 그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한테 어디 써 붙이기라도 한 건지 내게 커밍아웃하는 친구들이 유독 많았다. 가끔은 친한 친구에게 이런 현상에 대해 소소한 불평불만을 말하기도 했다. 다들 날 좋아할 것도 아니면서 자꾸 커밍아웃한다고. 물론 농담이다. 친구들과 연결되는 행위가 내심 즐거웠다. 처음 겪는 나만의 ‘우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고, 안전함과 안정감을 갈구하는 과정이었다.
아마 내가 사회문화 시간에 ‘모욕감’이라고 느꼈던 그 감정은 ‘사회적 소수자’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소단원명을 보고 느꼈던 약간의 기대가 또다시 실망으로 이어졌을 때, 그 지겨운 반복에서 오는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 같다. 무한히 반복되는 기대-실망 사이클에서 생겨난 모욕감, 좌절감, 수치심, 소외감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은 나를 잔뜩 갉아먹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은 나를 완전히 잡아먹진 못했고, 그들에게서 벗어나 나만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줬다.
고등학교 3학년인 나는 학교를 떠나기까지 이제 1년도 안 남았다. 나는 예상한다. 학교 밖에서도 이러한 기대-실망의 사이클이 계속될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과 내가 꾸려나갈 ‘우리’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으리라 다짐한다. 절대 완전히 잡아먹히진 않을 거라고.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나무늘보님이 서로 대비되는 정서를 중심 소재 삼아 글의 구조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데 탁월하다고 보았습니다. 긴 시간에 걸친 감정을 개괄하는 넓은 시야와 매 순간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세심한 시각의 균형감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세상을 무작정 낙관하지만은 않는 데서 느껴지는 직시의 용기, 진실한 희망의 목소리가 울림을 주었습니다. 심사위원 수빈 |
‘학교’를 떠올리고 학교 안의 ‘나’를 연관 지을 때 필연적으로 떠오르는 순간들과 감정들, 눈빛들이 있다. 그 기억의 단편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이룬다.
고등학교 2학년 사회문화 시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배울 때, 우리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에는 어디에도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들어 있지 않았다. 모욕적이라고 느꼈다. 나는 ‘성소수자’로서 분명히 힘들었는데, 힘들어하는 소중한 내 친구들을 너무 많이 봤는데 교과서에선 나와 내 친구들이 완벽하게 지워진 기분이었다.
어른들은, 그중에서도 학교 안의 어른들은 내게 항상 불신의 대상이었다. 특히 나는 6년 내내 기독교 미션스쿨을 다녔기 때문에 더더욱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정말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는데, 전부 믿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항상 두려웠다. 정말 좋은 선생님들조차도 더 많은 ‘나’를 이야기하면 순식간에 다른 얼굴을 보여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리 좋아하는 선생님이어도 속으로 자꾸 비꼬게 됐다. 저분도 어차피 ‘진짜의’ 나는 안 좋아하겠지. 놀라겠지. 어떤 얼굴을 보일까. 실제로 많은 선생님들은 내 기대를 자주 저버리셨다. 나는 항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들의 농담에,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에 가장 크게 무너졌다. 매번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의심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좋아하다가 결국에는 실망하는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했다.
나의 지난 5년은 그 과정의 지긋지긋한 반복이었고, 나는 나의 에너지를 잃지 않기 위해 정신을 무장했다. ‘내가 그들을 깊이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해서 굳이 그들에게 커밍아웃을 할 필요도, 커밍아웃하는 상상을 할 필요도 없다. 인간은 다면성을 띠기 때문에 좋은 사람도 나쁜 면을 가질 수 있다.’ 무사히 제정신으로 학교를 다니려고 이 두 문장을 매일매일 주문처럼 외웠다. 그동안 내 정체성을 굳이 드러낼 필요와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 대충 맞춰주는 법, 호응하는 법도 체득했다.
선생님들을 내내 불신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애들이랑 있을 때는 집단의 분위기와 애들 개개인의 태도를 좀 더 예민하게 감각해야 했다. 학교에서 자꾸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 얘길 늘어놓는 나를, 멋있는 동아리 선배 언니 얘길 꺼내는 나를, 더 나아가 이따금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발표하고, 다양성에 대해 발표하는 나를 보며 어떤 친구들은 내가 자기들과 다르다는 걸 얼핏 느끼지만, 그 사실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다름을 적확한 단어로 명명하긴 부담스러워해도 내가 그들의 ‘우리’가 아닐 때 우리는 다 같이 느낄 수 있었다.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의 여자친구가 되고 싶다고, 결혼하고 싶다고 장난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언니가 너무 멋지다고 나도 결혼하고 싶다고 얘기하다가 나중에는 매번 의문을 갖는 친구들이 귀찮아서 그냥 그 말을 삼켰다.
어떤 친구들과는 서로를 어렵지 않게 알아봤다. 중1 때 정체화한 이후 5년 조금 넘게 학교를 다니면서 정말 많은 커밍아웃을 했다. 처음에는 손에서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었다. 카카오톡으로 말을 빙빙 돌리다 쏟아내다시피 했다. 그다음부터는 훨씬 익숙해졌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는 기준은 단순했다. ‘안전함’이 거의 전부였다. 그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친구들도 만났다. 고1 겨울방학에 가장 친한 중학교 친구들 몇에게 커밍아웃을 했는데 걔네가 전부 아무렇지 않게 받아줬다. 집단 내에서 모두가 나의 지향성을 알고 있는데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전과 완벽히 똑같이 대해주는 경험, 안전함에서 비롯된 그 거대한 안정감은 진짜로 끝내줬다. 일상은 계속 흔들리고 불안했는데 걔네를 생각하면 언제나 좀 나아졌다. 아침에 내 휴대폰의 알람을 대신 꺼주는 엄마를 혹시 퀴어 콘텐츠 관련 팝업이 뜰까 봐 짜증스럽게 저지할 때, 읽고 싶은 퀴어 서적을 제목 때문에, 표지 때문에 사지 못할 때, 혹은 몰래 사서 몰래 보관할 때 느끼는 약간의 죄책감들은 걔네를 만날 때 무제한적으로 해방됐다.
커밍아웃을 받기도 많이 받았다. ‘걸어 다니는 커밍아웃’도 아니고 그냥 앉아서 커밍아웃하는 수준이어서 그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한테 어디 써 붙이기라도 한 건지 내게 커밍아웃하는 친구들이 유독 많았다. 가끔은 친한 친구에게 이런 현상에 대해 소소한 불평불만을 말하기도 했다. 다들 날 좋아할 것도 아니면서 자꾸 커밍아웃한다고. 물론 농담이다. 친구들과 연결되는 행위가 내심 즐거웠다. 처음 겪는 나만의 ‘우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고, 안전함과 안정감을 갈구하는 과정이었다.
아마 내가 사회문화 시간에 ‘모욕감’이라고 느꼈던 그 감정은 ‘사회적 소수자’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소단원명을 보고 느꼈던 약간의 기대가 또다시 실망으로 이어졌을 때, 그 지겨운 반복에서 오는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 같다. 무한히 반복되는 기대-실망 사이클에서 생겨난 모욕감, 좌절감, 수치심, 소외감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은 나를 잔뜩 갉아먹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은 나를 완전히 잡아먹진 못했고, 그들에게서 벗어나 나만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줬다.
고등학교 3학년인 나는 학교를 떠나기까지 이제 1년도 안 남았다. 나는 예상한다. 학교 밖에서도 이러한 기대-실망의 사이클이 계속될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과 내가 꾸려나갈 ‘우리’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으리라 다짐한다. 절대 완전히 잡아먹히진 않을 거라고.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나무늘보님이 서로 대비되는 정서를 중심 소재 삼아 글의 구조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데 탁월하다고 보았습니다. 긴 시간에 걸친 감정을 개괄하는 넓은 시야와 매 순간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세심한 시각의 균형감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세상을 무작정 낙관하지만은 않는 데서 느껴지는 직시의 용기, 진실한 희망의 목소리가 울림을 주었습니다.
심사위원 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