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무지개백일장 수상작

학교와 나 그리고 정체성의 퍼즐 / 류애, 2006년생, 나다움상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난 내가 ‘뼈테로’라고 생각했다. 학교에 퀴어 인권 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진행하면서도 나는 그저 ‘무지갯빛 세상을 꿈꾸는 이성애자’였다. 남자친구가 있었기에, 한때 현생을 갈아 넣으며 방탄소년단 덕질을 했었기에, 당연히 내 사랑의 대상은 남자뿐일 거라 생각했고, 딱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 박을 만났을 때도 그를 그저 친해지고 싶은, 얼굴 한번 기깔나게 생긴 친구라고만 생각했다.

  박을 처음 만난 건 교내 퀴어 인권 모임을 만들 때였다. 

  나의 학교는 ‘국제고’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제적인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보수와 혐오의 공간이었다. 성소수자 가시화 활동을 준비하면서 선생님들께 “외부에서 우리 학교 내 성소수자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급식실에서는 몇몇 동급생들에게 ‘무지개 새끼들’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각종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학교 익명 온라인 사이트에는 무지와 혐오로 뒤덮인 글들이 올라왔다. 그럴수록 모임 내 친구들끼리는 더 끈끈해졌다. 서로 챙기고 챙김받는, 누군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같이 분노하고 목소리 내주는 사람들이 되었다.

  박은 그중에서도 특히나 단단한 사람이었다. 세상 모든 부치들 다 씹어 먹을 수 있는 까리한 얼굴로, 직각 어깨가 빛나는 와이셔츠를 입고, 특유의 카리스마로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도 가끔은 아무렇지 않게 타고난 다정함이 가득 담긴 말들을 쑥 내밀었고, 가끔은 아무렇지 않게 삼인칭을 섞어 쓰며 무자비하게 귀여운 애교를 보여주었다.

  그런 박을 보면서 느껴지는 감정을 처음에는 부정했다. ‘여성 간의 사랑에 대한 동경이 있기 때문인가’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그저 착각일 뿐이라 여겼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 멍청하게도 그렇게 여겼다. 난 ‘아무래도 이성애자’이니까 박은 그저 내가 특별히 더 친해지고 싶고, 아끼는 친구일 뿐이라고, 누가 봐도 멋있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박에게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 거라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그 세뇌가 통하지 않았다. 40명이 넘게 찍힌 단체 사진에서도 한 번에 박의 얼굴을 찾을 수 있었고, 박의 반 앞을 지날 때마다 창문 너머의 박을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기웃거렸다. 아침에 만나 인사만 해도 오전 내내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동안 이성애자라는 틀 안에서 거부당하던 사랑이라는 것이 반항이라도 하는 듯 주체할 수도 없이 새어 나왔다.

  정체성에 대한 가능성이 한번 열리고 나니 잊고 있었던, 어쩌면 스스로 거부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일본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던 연극을 보며 주인공 역할의 여자 배우와 결혼하고 싶다 생각했던 기억이, 중학생 때 예쁜 영어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때마다 괜히 긴장되고 떨렸던 기억이, 고등학교에서의 첫날 교실 앞문으로 들어온 시크한 인상의 친구를 보고 설렜던 기억이……. 마치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나뉘어 있던, 그래서 알 수 없었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들이 맞춰져 갔다.

  그렇게 나는 18년 만에,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활동을 한 지 5년 만에, 내가 여자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나의 삶이 드라마였다면 이제 나는 사랑을 쟁취하고 박과 깨 떨어지는 연애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드라마는 펼쳐지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굳어버리고 마는 나의 고질병 때문이었다. 정말 원망스럽게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부터는 전처럼 대화를 하기는커녕 박과 마주치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져서 도망을 가버리고 말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박이 지나치게 인기가 많다는 것이었다. 거의 여고에 가까운 성비의 학교에서 기깔나는 부치인 박은 매일같이 친구들로부터, 후배들로부터 ‘결혼해달라’는 가벼운 고백들을 받았다. 내가 몇백 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단어 하나하나를 고민해 가며 건넨 칭찬과 나름의 플러팅도 그저 수많은 가벼운 고백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럴 때마다 난 그저 소심한 내 성격을, 그가 좋아하는 에스파의 윈터처럼 예쁘지 못한 나의 얼굴을 탓하며 자책할 뿐이었다. 그런 마음 시달림 속에서 박의 운명의 사람은 내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관계를 진전시킬 자신도 없었던 나는 그가 내 마음을 알아주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고등학교 2학년의 마지막 날 고백을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아니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학년이 바뀌고, 이젠 박을 거의 보지 못한다. 그러나 여전히 복도에서 스쳐 가는 박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여전히 핸드폰에 ‘ㅂ’만 쳐도 문장 자동 완성 기능으로 나타나는 박의 이름을 볼 때마다 울고 웃었던 작년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여전히 두근거린다.

  나의 첫 번째 퍼즐 조각이었던, 누구보다 빛나던 그를 고백 한 번으로 잘 정리해 보내겠다는 것은 그저 나의 오만이었나 보다. 누군가 짝사랑의 팁을 ‘게으르기’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저 ‘조금 더 게으름을 부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뿐이다.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류애님의 글이 변화해가는 감정의 양상을 세심하게 포착하고, 삶에서 스쳐 지나가기 쉬운 구체적 장면을 길어 올려 묘사함으로써 보편의 공감을 잘 끌어낸다고 보았습니다. 진솔함에 기인한 힘을 지닌 문장은 읽는 이들을 글 속으로 성큼 끌어당기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지닐 수 있는 첫 번째 용기라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합니다.

심사위원 수빈